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보리밧 사잇길을 걸어보신 기억이 있으세요? 그 시절엔 꿈이었고 생명이었던 보리가 이제는 낭만과 추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먹을 것이 없었으면 라면이라도 먹지 그랬느냐는 요즘 아이들에게 보릿고개 이야기는 호랑이와 할머니가 나오는 옛날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봄이 찾아오기 시작할 무렵, 잔설이 희끗희끗한 보리밭에 파릇파릇 보리싹이 올라오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보리밭으로 나갔습니다. 아직 겨울의 끄트머리인지라 얼어죽을까 걱정이 되는 보리였지만 사람들은 밭고랑에 일렬로 서서 여린 보리를 하나 하나 빼지 않고 밟아대었습니다. 보리밟기에 동원된 학생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칙칙폭폭 기차놀이를 하면서 보리밭을 밟기도 하였습니다.
보리가 뿌리를 내리고 웃자라게 되면 흙에 틈이 생기게 됩니다. 흙과 흙이 벌어진 사이에 서릿발이 생기기도 하고 또한 보리 뿌리가 허공에 뜨게 되어 뿌리가 말라비틀어지게 되어 보리가 제대로 살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겨울을 이기고 새순을 틔운 모습이 애처롭지만 보리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걸 밟아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 \'보리뿌리 점\'을 봅니다. 보리를 뽑아 보고 뿌리가 2개면 흉년이요, 3개면 풍년이라고 했습니다. 뿌리의 생육상태가 좋은 것을 보고 풍년이 들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은 점이라기 보다는 과학적인 관찰이라고 해야 옳겠지요.
보리밭에 불던 푸른 바람은 우리의 위안었습니다. 푸른 바람이 불면 보리는 바람에 밀리지 않고 바람을 이고 갑니다. 보리밭에 부는 푸른 바람은 빳빳하게 머리를 들고 서서 바람을 맞이하는 밀밭에서 부는 바람과도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푸른 바람 덕분에 무럭무럭 자라난 보리가 갈대색으로 변하면 보리밭에는 온통 구수한 냄새로 가득하지요. 이맘때쯤 보리타작 마당에는 보릿고개를 무사히 넘기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축제가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제는 \'바람도 지쳐 고독하고, 흙도 배고파 귀신 냄새가 나는\' 보릿고개,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 뿐이던 보리밭 사잇길을 옛 일로 추억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내 인생에 보리밟기\'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봉의 아침편지 신청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