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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와 '들머리판'
들머리와 들머리판
일이란 무엇인가. 일은 일(一)과 통하는 것. 그러니까 인생에서 첫째로 꼽아야 하는 것이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일을 통해 자기의 존재를 지탱하고, 일을 통해 자기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일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하는 모든 몸짓은 일이다. 먹는 일, 쉬는 일, 자는 일, 노는 일도 모두 일 아닌가. 산다는 것 자체가 일이기 때문에 사전에서는 삶을 사는 일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일이 시작되는 머리를 첫머리, 들어가는 첫머리를 들머리, 처음 시작되는 판을 첫머리판이라고 한다. 어떤 일의 첫머리를 뜻하는 첫단추, 맨 처음 기회를 뜻하는 첫고등, 맨 처음 국면을 뜻하는 첫밗 같은 말들도 모두 일의 시작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일을 할 대강의 순서나 배치를 잡아 보는 일, 즉 설계(設計)를 하는 일은 얽이라고 하는데, 움직씨로는 ‘얽이친다’고 한다. 얽이에 따라 필요한 사물을 이리저리 변통하여 갖추거나 준비하는 일은 마련이나 장만, 채비라고 한다. 앞으로의 일을 미리 마련해두는 것은 ‘징거둔다’, 여러 가지를 모아 일이 되도록 하는 것은 ‘엉군다’, 안 될 일이라도 되도록 마련하는 것은 ‘썰레놓는다’고 말한다.
진행되는 일이 잘못되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하는 일이 잡도리인데, 설잡도리는 어설픈 잡도리, 늦잡도리는 뒤늦은 잡도리다. 아랫사람을 엄하게 다루다가 조금 자유롭게 늦추는 일을 ‘늑줄준다’고 하고, 늑줄을 주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죄는 일을 다잡이라고 한다. 감장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제 힘으로 꾸려 가는 것이고, 두손매무리는 일을 함부로 거칠게 하는 것, 주먹치기는 일을 계획 없이 그때그때 되는 대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남의 일을 짓궂게 훼방하는 짓은 헤살이라고 하고, 돼 가는 일의 중간에 방해가 생긴 것은 ‘하리들었다’고 한다. 일이 돼 가는 형편을 매개라고 하는데, 매개가 제법 좋은 것은 ‘어숭그러하다’, 성했다 망했다 하는 것은 ‘얼락배락한다’. 매개가 안 좋아 일을 중도에서 그만두거나 포기한 것은 ‘반둥건둥했다‘ ’중동무이했다‘, 일을 망쳐 버린 것은 ’털썩이잡았다‘ ’허방쳤다‘고 표현한다. 허방은 움푹팬 땅을 말하는 것으로 함정을 허방다리라고 하는 것이다.
고동이나 대머리는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비는 일의 진행과정에서 중요한 단계나 대목을 말하는데, 가장 긴요한 아슬아슬한 고비는 고비판이나 고빗사위라고 한다. 꽃물이나 단대목도 어떤 일을 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이나 상황을 뜻한다. 일의 성패가 결정되는 마지막 끝판은 대마루판이라고 한다.
곤죽은 일이 엉망진창이 되어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태, 결딴은 아주 망그러져 도무지 손을 쓸 수 없게 된 상태, 깍두기판은 뒤범벅이 되어 질서 없이 난장판이 된 상태를 가리킨다. 이치나 도리에 맞지도 않고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태는 우리가 잘 아는 판, 즉 개판이다.
일이 끝판에 이르는 것은 망고라고 한다. 원래 망고는 연을 날릴 때 얼레의 줄을 전부 풀어주는 일을 가리킨다. 일의 한 가지 한 가지가 끝나는 단락(段落)을 메지라고 하고, 어수선한 일의 갈피를 잡아 마무르는 끝매듭을 아퀴라고 하는데, 메지를 내어 아퀴를 짓는 것을 매잡이나 매조지라고 한다. 끝마무리나 끝갈망, 뒷갈망도 다 일의 뒤끝을 마무리하는 일을 가리킨다. 갈망은 어떤 일을 감당하여 수습하고 처리하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끝판은 끝판인데 있어서는 안 될 끝판도 있다. 있는 대로 다 들어먹고 끝장나는 판을 뜻하는 들머리판이나 들어판이 그것이다. 둘 다 줄여서 들판이라고 하는데, 파국을 당하게 만드는 것을 ‘들판을 낸다’고 말한다.
-장승욱 지음,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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