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밖 스튜디오
추억 - 시골 초등학생의 겨울(13) - 칡 캐기, 칡즙 먹기
♣ 추억 - 시골 초등학생의 겨울(13) - 칡 캐기, 칡즙 먹기 ♣ 시골에서 겨울에는 간식으로 먹을 것이 무척 귀했습니다. 겨울 끼니는 쌀을 조금 섞은 보리밥에 김치, 시래기 된장국이 반찬이었기에 숟가락을 놓고 돌아서면 곧 배가 고팠습니다. 부잣집 아이들은 집에서 이것, 저것 간식으로 먹을 것이 많았지만 보통의 아이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방법은 있었습니다. 얼음이 얼면 산에 가서 칡을 캐어 작은 톱이나 낫으로 잘라서 입에 넣어 씹어서 칡즙을 먹었습니다. 날씨가 완전히 겨울이어야 칡즙이 달콤하고 맛도 더 있었습니다. 다른 계절에는 칡즙이 많긴 해도 맛이 없어서 먹지 않았습니다. 괭이와 삽, 낫을 가지고 산에 가서 칡넝쿨이 굵은 것을 골라 땅을 파면 칡뿌리가 어른 팔뚝 크기의 칡을 캘 수 있었습니다. 칡을 캐 오면 우물 물을 퍼서 칡에 묻은 흙을 씻어 내고 칡 줄기에서 가까운 칡뿌리는 잘라냅니다. 그리고 한 입에 들어갈 길이로 다시 잘라서 먹었습니다. 호주머니에 칡뿌리 자른 것을 넣어 다니며 생각 날 때마다 칡을 먹었습니다. 칡은 오랫동안 씹으면 칡즙과 칡가루가 입안에 가득해 겨울 간식으로는 그만이었습니다. 한 입 칡뿌리를 씹어 단물과 칡가루를 다 먹으면 씹었던 칡 찌꺼기를 뱉어 버리고 다시 칡뿌리를 한 입 물어뜯어 계속 씹었습니다. 운이 좋으면 칡뿌리가 아이들 허벅지만 한 큰 칡을 캘 수 있었는데, 그때는 칡을 작두로 잘게 썰어 물에 담가 놓으면 칡가루가 물 아래로 가라앉는데 이것으로 칡 떡을 해 먹기도 했습니다. 칡즙은 거무스름한 색인데 칡을 많이 먹으면 입술과 혓바닥 입안, 치아까지 모두 시커멓게 변했습니다. 겨울에는 아이들 모두가 칡을 먹기에 동네 아이들 전체가 입이 시커멓게 되어 보기가 좀 우스웠습니다. 그래도 모두 다 그렇기에 별로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동네 길바닥에는 아이들이 칡을 씹고 뱉어낸 칡 찌꺼기들이 눈에 뜨이게 많아 어르신들께 꾸지람을 들을까 싶어 어르신들과 마주치면 인사만 하고 칡은 먹지 않았습니다. 연 날리기, 차 치기, 숨바꼭질, 비석 치기, 팽이 돌리기, 스케이트 타기, 물총 쏘기 할 때에도 칡을 계속 씹었습니다. 어금니가 묵직하게 아프기도 했습니다. 이듬해 2월에 개학해서 교실에서도 틈이 날 때마다 아이들 대부분이 칡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 때문에 교실 쓰레기통이 침이 묻은 칡 찌꺼기로 가득 차서 당번들이 짜증을 내기도 했고, 수업 시간에 먹다가 담임 선생님께 들켜서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어떤 해에는 칡을 아예 학교로 가지 못하게 교문에 계시는 선도 선생님 앞에서 선도들이 책 보따리와 호주머니를 검사하여 칡을 강제로 수거하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요즘 아이들은 칡을 주어도 먹지 않겠고, 저도 칡을 먹은 지가 정말 오래되었지만, 그때, 그 시절 한 입 가득 고이던 달콤한 칡즙 맛은 잊을 수가 없답니다. 올겨울에 시간을 내어 시골 고향에 내려가 친척 조카들을 데리고 산에 칡을 캐러 갔으면 하는 마음도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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