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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학교평가 - 성과주의가 관료주의를 만났을 때
성과주의가 관료주의를 만날 때
페이퍼 동아리. 페이퍼 컴퍼니라는 말은 들어 봤어도 페이퍼 동아리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 학교평가 지표에 '동아리 수' 같은 것이 들어가 있으면 그때부턴 동아리에서 어떤 활동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아리 수가 중요해진다. 심지어 어느 학교에는 교사 당 2개의 동아리가 배정되어 있다고 한다.
'클릭연수'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교사의 연수 이수 시간을 학교평가 지표에 넣으니 오로지 시간을 채우기 위해 교사들이 원격으로 연수를 이수하는 세태를 자조하는 지칭이다. 만약 학교평가가 낮게 나오면 연수 이수 시간이 적은 교사에게 화살이 돌아가니, 당장 필요하지 않은 연수임에도 불구하고 면피용으로 '클릭'한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세상에, 교사 자신의 성장이나 아이들의 발달과 무관한 연수를 오로지 책임을 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수한다니... 교사의 자존감을 참혹하게 무너뜨리는 일이다.
일제고사에서 기초학력 미달학생 비율을 평가에 넣는 것을 넘어 과거 3년 전과 비교하여 향상도를 반영한다고 하니 모든 학교에서 아주 난리다. 정작 정규시험인 중간, 기말 고사 때는 시험보던 아이가 잠을 자든, 답안을 한 번호로 죽 내려쓰든 교사는 관여할 수 없는데(실제로 관여하기 힘들다. 내신에 반영되는 것이므로 공정성 시비가 있을 수 있음), 일제고사를 볼 때는 '성의를 다해 시험을 보도록' 챙기고 한 번호로 내려 쓴 학생이 있는지 답안지를 검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두가 학교평가 지표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어떤 활동이 학교평가에 반영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둘러싸고 역량을 달리 투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아이들의 전인격적 발달을 위한 교육은 사라지고 오로지 학교평가 지표로 남길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기형적 세태가 학교를 위협하고 있다. 실제로 일년에 한 번씩 지급되는 학교성과급은 모든 학교를 S, A, B 등급으로 나누어 평가하고 높은 등급부터 대략 9 : 6: 3 꼴로 교사들에게 지급하게 돼 있다. 이러니 만약 한 학교에서 스스로 열심히 '성과적 활동'에 참여했다고 생각하는 교사가 다른 교사의 연수 이수 시간이 적어 A나 B등급을 받게 되면 동료를 원망하게 되는 비교육적 행태가 구조적으로 내재돼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형식화, 지표화, 계량화, 문서화하여 그 결과로 판단하고 비교하는 업무 진행 방식을 '성과주의'라 한다. 성과주의가 만연되면 하지 않은 일도 문서만 잘 갖추면 '한 일'로 둔갑하고, 열심히 한 일도 문서화에 소홀하면 공식적으로는 '하지 않은 일'이 된다. 성과주의가 만연한 학교에서는 책임을 면하는 방편으로, 필요하지 않은 일도 해야 하고, 필요한 일도 소홀하게 되는 이중적 모순에 빠진다. 한마디로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것, 노력보다 성공을 중시하는 것이 성과주의의 특징이다.
그런데 이 성과주의가 관료주의와 결합되면 무시못할 폭발력을 가진다. 막스베버는 '작업 능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조직'을 ‘관료주의 조직’이라 하였다. 학교에서 관료주의는 정해진 법규에 따라 서열을 바탕으로 배치된 구성원들이 업무를 진행한다. 초중등교육법, 국가공무원법,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공무원복무규정 등 관료제를 지탱하는 법률들은 촘촘하게 교사들이 해야 할 업무, 하지 않아야 할 일들을 규정한다. 이것이 예측이 힘들고, 역동적이며, 눈으로 잘 확인 되지 않는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교사에게 적용된다.
문제의 시작은 여기다. 학습이나 생활지도의 효과는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섬세한 관찰과 끝없는 기다림의 반복이다. 발달단계를 무시하고 밀어부치면 지식의 구성은 왜곡된다. 교사의 정성이 가득 들어간 생활지도의 효과는 그 학교를 졸업한 뒤에, 심지어 성인이 되었을 때 나타날 수도 있다. 어쩌면 영원히 내면화되어 그 사람이 가치있는 인생을 살도록 돕지만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본질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학적 고려를 무시하고 교육이 일어나는 장면에 성과주의와 관료주의가 만연하게 되면 파행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나는 교육파행과 황폐화의 주 요인으로 성과주의와 관료주의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 학교교육의 문제는 바로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극복할 것이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의 개선을 위해 '평가'는 필요하다. 그러나 평가의 목표, 내용, 방식이 잘못돼 있다면 원래 평가를 하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행 '학교평가'는 많은 부분이 잘못돼 있다. 우선 성과급과 연계하지 말아야 하며, 정말 학교를 질적으로 개선하고자 한다면, 해당 학교 구성원들에 의 마련된 자발적 평가 프로그램과 지표에 의해 교육의 과정과 성과를 스스로 평가하고 이후 학교운영에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페이퍼 동아리. 페이퍼 컴퍼니라는 말은 들어 봤어도 페이퍼 동아리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 학교평가 지표에 '동아리 수' 같은 것이 들어가 있으면 그때부턴 동아리에서 어떤 활동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아리 수가 중요해진다. 심지어 어느 학교에는 교사 당 2개의 동아리가 배정되어 있다고 한다.
'클릭연수'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교사의 연수 이수 시간을 학교평가 지표에 넣으니 오로지 시간을 채우기 위해 교사들이 원격으로 연수를 이수하는 세태를 자조하는 지칭이다. 만약 학교평가가 낮게 나오면 연수 이수 시간이 적은 교사에게 화살이 돌아가니, 당장 필요하지 않은 연수임에도 불구하고 면피용으로 '클릭'한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세상에, 교사 자신의 성장이나 아이들의 발달과 무관한 연수를 오로지 책임을 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수한다니... 교사의 자존감을 참혹하게 무너뜨리는 일이다.
일제고사에서 기초학력 미달학생 비율을 평가에 넣는 것을 넘어 과거 3년 전과 비교하여 향상도를 반영한다고 하니 모든 학교에서 아주 난리다. 정작 정규시험인 중간, 기말 고사 때는 시험보던 아이가 잠을 자든, 답안을 한 번호로 죽 내려쓰든 교사는 관여할 수 없는데(실제로 관여하기 힘들다. 내신에 반영되는 것이므로 공정성 시비가 있을 수 있음), 일제고사를 볼 때는 '성의를 다해 시험을 보도록' 챙기고 한 번호로 내려 쓴 학생이 있는지 답안지를 검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두가 학교평가 지표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어떤 활동이 학교평가에 반영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둘러싸고 역량을 달리 투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아이들의 전인격적 발달을 위한 교육은 사라지고 오로지 학교평가 지표로 남길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기형적 세태가 학교를 위협하고 있다. 실제로 일년에 한 번씩 지급되는 학교성과급은 모든 학교를 S, A, B 등급으로 나누어 평가하고 높은 등급부터 대략 9 : 6: 3 꼴로 교사들에게 지급하게 돼 있다. 이러니 만약 한 학교에서 스스로 열심히 '성과적 활동'에 참여했다고 생각하는 교사가 다른 교사의 연수 이수 시간이 적어 A나 B등급을 받게 되면 동료를 원망하게 되는 비교육적 행태가 구조적으로 내재돼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형식화, 지표화, 계량화, 문서화하여 그 결과로 판단하고 비교하는 업무 진행 방식을 '성과주의'라 한다. 성과주의가 만연되면 하지 않은 일도 문서만 잘 갖추면 '한 일'로 둔갑하고, 열심히 한 일도 문서화에 소홀하면 공식적으로는 '하지 않은 일'이 된다. 성과주의가 만연한 학교에서는 책임을 면하는 방편으로, 필요하지 않은 일도 해야 하고, 필요한 일도 소홀하게 되는 이중적 모순에 빠진다. 한마디로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것, 노력보다 성공을 중시하는 것이 성과주의의 특징이다.
그런데 이 성과주의가 관료주의와 결합되면 무시못할 폭발력을 가진다. 막스베버는 '작업 능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조직'을 ‘관료주의 조직’이라 하였다. 학교에서 관료주의는 정해진 법규에 따라 서열을 바탕으로 배치된 구성원들이 업무를 진행한다. 초중등교육법, 국가공무원법,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공무원복무규정 등 관료제를 지탱하는 법률들은 촘촘하게 교사들이 해야 할 업무, 하지 않아야 할 일들을 규정한다. 이것이 예측이 힘들고, 역동적이며, 눈으로 잘 확인 되지 않는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교사에게 적용된다.
문제의 시작은 여기다. 학습이나 생활지도의 효과는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섬세한 관찰과 끝없는 기다림의 반복이다. 발달단계를 무시하고 밀어부치면 지식의 구성은 왜곡된다. 교사의 정성이 가득 들어간 생활지도의 효과는 그 학교를 졸업한 뒤에, 심지어 성인이 되었을 때 나타날 수도 있다. 어쩌면 영원히 내면화되어 그 사람이 가치있는 인생을 살도록 돕지만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본질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학적 고려를 무시하고 교육이 일어나는 장면에 성과주의와 관료주의가 만연하게 되면 파행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나는 교육파행과 황폐화의 주 요인으로 성과주의와 관료주의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 학교교육의 문제는 바로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극복할 것이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의 개선을 위해 '평가'는 필요하다. 그러나 평가의 목표, 내용, 방식이 잘못돼 있다면 원래 평가를 하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행 '학교평가'는 많은 부분이 잘못돼 있다. 우선 성과급과 연계하지 말아야 하며, 정말 학교를 질적으로 개선하고자 한다면, 해당 학교 구성원들에 의 마련된 자발적 평가 프로그램과 지표에 의해 교육의 과정과 성과를 스스로 평가하고 이후 학교운영에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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