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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말과 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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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샘의 담벼락에서 나를 지칭하여 '네임드'로 표현한 글을 보았다. 그 말을 시인하든 부인하든 큰 의미가 있겠나 싶어 오늘은 그동안 SNS를 사용하면서 느낀 소회를 밝힌다. 페북은 한마디로 '말'의 경연장이자 '삶'의 표현장이다. 비슷한 관심사를 발견하게 해주고 연결지으며, 잘하면 사랑이 싹틀 수도 있는 사교의 장이기도 하다. 특히 내 경우 관심사가 교육 분야이기 때문에(사실 교육말고도 관심이 있거나 배우고 싶거나 아는척 하고 싶은 분야도 많음) 교육에 관한 글, 현장 상황을 묘사한 글, 정책 제안이나 비판 같은 글들을 많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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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커버그가 페북 아이디어를 처음 설계할 당시만 해도 사실상 '온라인 짝짓기'에 가까운 가벼운 프로그램이었다. 지금도 사용자 정보로 연애 스타일을 묻는데 그 배경을 따라가면 대학생이었던 주커버그의 악동스런 관심이 있다. 탄생이 그러하기 때문에 프로필 사진과 직업, 관심사를 공유하는 방식 등이 '내가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길 원하는가'에 맞춰진다. 설계자는 네트워크 시대 현대인의 고독감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 친구의 의도대로 네트워크는 고독한 현대인의 관종력을 키웠고 나르시시즘과 엿보기 욕망을 자극했다. 관종과 자뻑을 거쳐 흑화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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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 얘기로 돌아오면, 내가 쓴 글의 대부분은 '교육칼럼'이다. 쓰는 글의 분량도 꽤 돼서 쉽게 한 방에 읽히지 않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머리를 식히기 보단 생각을 복잡하게 한 글들이 많았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의 성격을 막론하고 권력을 비판했고, 필요하면 대안을 제시했다. 아무튼 쉬이 읽히는 글이 아니었고, 독자를 당기는 글도 아니었다. 난 독자를 존중하지만 과잉 의식하지 않는다. 종종 불친절한 글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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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네임드'라는 호칭이 붙었다면 그건 내 의도가 아니다. 난 이 '네임드'라는 말이 가진 부정적 뉘앙스에 주목한다. 특히 끝에 붙는 named의 'ed', 한글로 표현할 때도 '드'는 뭔가 자가발전과 인위성의 느낌이 강하다. 즉 네임드는 '유명한' 이란 번역도 가능하지만 '알려진'이란 느낌도 강해서 글쓴이의 의도를 포함한다고 봐야 한다. 당연히 글을 쓰는 사람은 널리 읽히길 기대하지만 글이 가진 '질'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읽어주길 바란다면 그건 그냥 설익은 욕구일 뿐이다. 내가 또 쓸데없이 자존심은 강해서 독자의 마음에 들기 이전에 내 맘에 들지 않으면 아예 공개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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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페북 글쓰기를 했다. 그리고 지난 이틀 동안 5천 명에 이른 페친을 정리했다. 몇 시간 동안 정리한 것이 650명이다. 페북은 친구를 선택적으로 정리하는 방법이 없다. 모두 살펴보고 수작업을 해야 한다. 정리의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친구 신청이 500명을 넘어가고 있는데, 그냥 친구로만 연결돼 있을 뿐 전혀 교류가 없는 분들, 거의 내 글을 읽고 있지 않다고 판단되는 분들로 인해 새로운 친구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아쉬웠다. 650명 정리하는데도 몇 시간이 걸렸다. 그 바람에 5천명을 한 명 한 명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여러 추억도 떠올랐다.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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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이 뭐 그리 진지한 공간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나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맞다. 그런데 의미 부여는 각자 하는 거다. 페북이란 플랫폼은 하나지만 사용자가 쓰는 방식이나 취향에 따라 고유한 화면을 제공한다. 즉 사람마다 보는 화면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페북의 큰 강점 중 하나이다. 즉 페북은 개별성과 고유성이 있는 공간이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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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내가 만약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람들을 모아서', '특정의 목적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와 더 친한 사람과 배타적으로 대해야 사람을 구분 혹은 배제하면서 일종의 온라인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다. 내가 가진 직관에 의존하여 판단컨대 그런 시도는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 만약 잘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한시적인 것이며 나와 내 주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와 내 주변의 생각을 여론이라 착각하는 것은 과잉 행동을 가져온다. 인위적으로 생태계를 교란했을 때 후과를 우리는 알고 있다. 건강한 생태계는 다양한 종들이 모여 서로 섞이고 어우러지는 것을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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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과 교류할 때 '말하지 않는 점'에 주목한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그것대로 의미있는 것을 발견하려 노력하는 것이 바로 '감수성'이다. 이런 감정은 글이나 말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 뿐만 아니라 공기를 타고 온다. 비트겐 슈타인은 '모든 것은 언어로 표현하고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고 했지만 바로 그 말 때문에 내가 분석철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연'들이 있다. 마땅히 교육에 관심이 있는 자는 말과 글 뒤에 가려진 '아직 못 다한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좋아요나 댓글이 없어도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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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 글을 읽고 있지만, 좋아요나 댓글을 주저하는 분들의 오묘한 느낌을 안다. 몇년 동안 좋아요 한 번 누르지 않았지만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 '글 잘 읽고 있어요'라는 확인에서 알 수 있다. 페북 자체에 글을 흔적을 남기고 싶진 않지만 좋은 글을 읽고 싶은 욕구를 나는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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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정리한 650명은 내 직관에 따르면 그런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았던 분들인 셈인데, 그 판단에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럴 경우 여러 말 할 필요 없이 다시 친구 신청을 하면 된다. 나는 다양한 관심사의 벗들과 교류하고 싶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페북 생태계 다양성을 위한 실천의 방법이다.
덧1/9번 관련> 그러나 페북의 알고리즘에 따르면 좋아요를 많이 누를 수록, 댓글을 많이 달수록 그 사람의 글이 본인의 담벼락에 자주 노출이 된다. 손가락이 부러지지 않을 정도라면 마우스 버튼 한 번 눌러주는 것이 본인의 독서활동을 풍요롭게 만든다. 참고하시길. 그러나 또 한편, 이 방법은 소위 '페북 네임드'들의 글을 더 많이 노출하게 함으로써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 결론, 욕구가 생길 때 참지 말고 눌러라.
덧2> 페북인생은 10년이지만 교컴칼럼(http://eduict.org/_new3/?c=1/23)까지 계산하면 23년 차다. 오래 쓴 것 치고는 성장이 보이지 않아서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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