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20년 짜리 상처를 치유하다
본 칼럼은 한겨레 기사로 선정되었습니다.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61711.html
꼭 20년만이었다. 필자가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던 그때 담임을 맡았던 1학년 6반 학생들이 성장하여 서른 네살이 되었다. 그들이 나를 찾았다.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다시 그 학교의 교수가 된 주영이와 청소회사를 운영하는 종민이가 연락을 취하여 열 다섯 명의 제자들이 모였다.
서른 살 젊은 혈기로 큰 망설임없이 해직을 감수했던 내 입장도 있었지만, 막 사춘기에 들어섰던 아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담임을 빼앗긴 그 기억은 오래도록 그들의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세상 어디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더라도 1989년 그 여름의 기억만큼 충격적인 것이 또 있었을까.
담임을 잃고 몇달 동안 새 담임의 지시를 전혀 따르지 않고 집단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듣고 나 또한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꿈을 꿀 때마다 나타났던 제자들, 우리 반 교실,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수업... 내가 다시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등등의 생각은 그 후 5년만에 인근학교로 복직하기 까지 하루도 떠난 날이 없었다.
5년 동안의 해직생활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물론 아이들에게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갈망... 궁금하고 또 궁금하여 아이들을 찾아 보고 싶었지만 다시금 기억을 반추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미루고 또 미루고...
결국 20년이 흘러 이제는 서로가 담담하게 웃으면서 그때를 추억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서로의 상처를 다시 드러내어 어루만지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이 번 모임은 그런 상처를 치유해 주는 자리가 되었다.
서로의 상처를 다시 드러내기에는 아이들도 나도 성장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것이 20년 걸렸을 뿐이다. 나도 아이들도 잘 참고 기다린 것이다. 너무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들이 모두 번듯한 성인이 되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감사하고 이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희들이 이렇게 성장한 모습을 보는 기쁨을 아마도 너희 스스로는 모를거야. 정말 고맙다. 멋지게 성장해줘서..."
나중에 배웅을 나온 주영이가 한 말이 뇌리에 남았다. "선생님, 저 개인적으로는 너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해직 후에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셔서 혹시라도 당시의 그 결정에 대하여 일말의 후회가 있었다고 말씀하실까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당당하신 모습, 너무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래,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제대로 사는 거다. 그게 내가 너희들과 나 스스로에게 내 준 숙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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