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찍은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이 사건은 뉴스가 됐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영상을 보는 마음은 당연히 불편하다. 모든 가르치는 이들은 교사의 입장에 감정을 이입했다. 그래서 마치도 내가 당한 사건인 양 모멸감을 느꼈다. 일상적으로 보일만큼 자연스럽게 교사를 폭행하는 영상 속 아이들의 모습은 이미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저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었던 교사의 대응이 답답했을 것이다. '기간제 교사'이기 때문에 신분상의 불이익을 우려해서였다는 말이 나온다. 아이들이 기간제 교사는 정규교사에 비하여 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피해 교사의 편에서, 이 사건이 미디어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시끄러운 상황을 피해가고 싶은 욕구가 존엄을 훼손 당하는 현실보다 컸을지도 모르겠다. 알려진 상황만으로는 교사는 적극 저항하지 않았고, 사건이 드러난 이후에도 아이들에게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어떤 숨은 맥락이 있는 것일까?
사건이 드러나자마자 국회는 정부가 발의한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일선 학교장이 학생 등에 의한 교원 폭행·모욕 행위를 알게 되는 경우 즉시 피해 교원에 대해 보호 조치를 한 뒤, 사건 내용과 조치 결과를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에게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은 학교장이 교육활동 침해 내용을 축소·은폐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매 맞는 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고 한다. 이 법으로 교원의 지위가 특별하게 향상될지, 매 맞는 교사가 정말 보호될지 의문이다. 내가 보기에 인성교육이 문제라고 하면서 '인성교육진흥법'을 만드는 동기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이래서 인성교육을 더 철저하게 시켜야 한다'고 인성교육 강화를 들고 나오는 사람도 있고, 이게 단지 그 학교, 그 교실만의 문제이냐고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를 질타하는 이야기도 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에 이렇듯 막가는 아이들이 양산됐으니 차제에 학생인권조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또 '교사들이 학생들을 더 높은 강도로 통제 혹은 제압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이야기에서 '체벌 옹호론'까지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팩트만을 놓고 보면, 아이들은 다중의 위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교사에게 명시적으로 폭언과 폭력을 가했다. 모두 만 14세 이상의 아이들이다. 다시 말해 교원지위향상 특별법 개정안 통과 이전에 이미 형사처벌의 요건을 모두 갖춘 셈이다. 물론 내 이야기는 이 아이들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자는 직설을 넘어 어떤 방식의 공론화가 더 유익할지를 묻는 것이다.
아이들을 '교복입은 시민'으로 부르는 배경에는 시민적 권리만을 상정하지 않는다. 시민사회가 부여하는 시민의 권리와 의무에는 주체적으로 여러 단위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는 물론이고 이에 상응하는 시민의 책무성을 동반한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거나, 타인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연민하지 않거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더라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시민적 가치를 체화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다.
시민적 권리와 의무에 대한 구성원간의 합의는 통념적으로 성인들에게서만 가능할 것이라 보지만, 이것은 아이들에게도 꼭 같이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시민성교육의 필요는 여기에서 비롯한다. 시민성교육은 권리와 의무를 알려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권리를 향한 적극적 노력과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자세, 이 개념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권리와 의무를 동반하는 지식, 가치, 태도는 함께 가는 개념이다.
따라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지식과 가치만 전달하는 것이 아닌, 상황에 따라 윤리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태도를 포함할 때 바람직한 시민성교육이 진행된다. 무책임성을 동반하여 규범에 벗어나는 행위를 했을 때 이를 통제하는 것은 '공동체가 합의한 약속'이다.
이것은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과 같이 가는 개념이다. 학생들의 인권보호는 '타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과 연동돼 있다. 이때 타자의 범주는 같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와 부모, 일반 시민 모두 해당한다. 도처에서 목격하는 관계의 파탄은, 그저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인식만으로 해결할 수 없고, 파탄의 책임을 적절하게 물어 윤리적 규범을 공동체의 약속으로 정해가는 과정에서 개선할 수 있다.
민주적 교실문화를 말할 때 '민주적'이란 말은 '권력 관계'의 불균형성을 전제로 한다. 교사는 아이들과 민주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절차와 방법, 그리고 소양과 문화를 체화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배우는 자는 무조건적으로 '돌봄'의 대상이 아니다. '돌봄' 담론은, 교사의 일방적 가르침을 학습자 중심으로 돌려놓는 데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학습자는 교사의 권위 혹은 권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여김으로써 수동성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민주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교사와 아이들에게서 상호적으로 일어나야 하고 그것에 관한 공동 책임을 포함해야 한다.
교원능력개발평가가 부적격 교원을 걸러내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은 이미 부적격 교원을 걸러낼 수 있는 많은 장치들, 예컨대 교육기본법이나 초중등교육법, 그 많은 시행령, 교원복무규정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을 통제하고 경쟁시키자는 수단으로 써먹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학생들이 다중의 위력으로 교사를 폭행한 이번 사건의 경우 체벌의 옹호나 인권조례 재검토 등 퇴행적 방식이 아닌, 이미 있는 장치들로 잘못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문화를 암묵적으로 조장해 온 무책임한 권력이 있다. 그리고 그 권력에 편승 혹은 기생해 온 관료들이 있고 고착화된 학교문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명시적으로 드러난 잘못된 행위를 뜬구름 잡는 담론에 묶어 방치할 수는 없다. 이러한 판단은 언제나 교사와 학생에게 동일한 잣대로 적용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이 동등하고 수평적이며 민주적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은 상호간의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이행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