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혹은 가르치는 자)의 성찰과 사유를 주제로 2시간 반에서 3시간 강의를 할 때는, 한 시간 이내의 이론, 다섯 가지의 활동과 다섯에서 열 개 꼭지의 에피소드를 엮어서 진행한다. 활동 과정은 주로 '글쓰기와 말하기'로 이뤄지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맥락으로 연결된다.*
활동3과 활동4는 묶어서 진행한다. 활동3에서 "교사로서 당신의 캐릭터를 함축할 수 있는 한 단어로 된 키워드와 그 이유를 적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참가사자들은 잠시 생각에 빠진다. 이때 깊이 생각하는것보다는 바로 떠오르는 것을 적도록 안내한다. 몇 사람이 발표하고, 필요하면 동료 참가자의 질문을 연결한다. 강사는 특별한 논평을 하지 않는다. 한마디 얹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만 인내한다. "저는 별도의 논평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진행에 집중하면 좋다.
활동4에서 반전이 이뤄진다. "방금 적었던 키워드는 사실입니까, 바람입니까?" 참가자들이 당황하거나, 흔들리거나, 혼란스러워한다. 말하자면 활동4는 다분히 의도한 과정이다. 자기정체성에 다가서는 이 활동에서 참가자들은 내가 생각하는 내가 1) 경험과 사실에 기반한 나인지, 2) 타인이 이렇게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상상 속의 나인지, 3) 이상적으로 그리는 바람 속의 나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나와 이상적인 내가 타인에 의해 형성되기를 바라는 나 이 세가지 영역을 연결하는 '사이'에 대해 생각한다. 나와 당신 사이, 나와 상상 사이, 나와 내면의 나 사이.
이 사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틀잡는 것이 아니다. 다분히 예술적이며 미학적인 속성이 이러한 질적 과정에 담겨져 있다. 아이즈너는 '미학적 감식안'이라는 말로 사물과 인간을 대하는 질적인 눈에 대하여 말한 바 있다. 교사로서 달성해야 할 기준(예를 들면 교원능력개발 평가에 나오는 영역별 지표 같은 것)을 제시하고 과학적 기법을 동반한 훈련을 통하여 여기에 다가서야 한다고 보는 관점을 넘어선 예술적이며 역동적인 과정에서 교사에게 맥락적으로 형성되는 '사물과 인간을 깊이 대하는 눈'이 바로 미학적 감식안이다.
자기성찰 과정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낼 수록 좋다. 사적 경험의 노출을 불편해 하는 경우에는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활동과정 자체의 불편함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잘 조율해야 한다. 순발력으로 되는 문제는 아니다. 오랜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 학교 구성원을 대상으로 이 방법을 적용할 때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 공간에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구성원들은 '타인에 의해 기대되는 발언'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교사전체가 참가하는 학교 전체연수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말도 된다. 강의를 의뢰받으면 꼭 확인한다. 희망자만 참여하는지, 아니면 전체교사가 참석해야 하고 출석도 확인하는지 후자라면 정중히 거절한다.
이른바 '연수'가 아무리 좋아도 연수의 목표는 그저 '사소한 자극'일 뿐이다. 아무리 훌륭한 연수에 참가했다 하더라도 교사로서 자기의 삶과 수업을 스스로 돌아보고 사유하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공동체 안에서 행해지는 수업평가회의 효과는 참여교사, 방식에 따라 효과 차이가 크다. 구조화된 틀 안에서 자신을 단련하는 것에 익숙한 교사도 있고, 자유롭고 비형식적인 방법으로 성장하는 것을 선호하는 교사도 있다. 일반화할 수 없는 문제이다. 교사들의 성장은 매우 다양한 모습, 다채로운 경로로 이뤄진다. 그 '차이'에 집중하는 것이 질적인 시선이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 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의 한 축인 "학생들에게 어떤 교사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묻고 발표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협력도 하고, 공동체도 형성하며 필요에 따라 연대한다. 공동체 안에서 가져야 할 책무감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나를 단련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엄중하게 묻고 되물으며 한 걸음씩 성장하는 것을 체화하는 것이다.
활동5는 '선택'에 관한 것이다. 교사로서 우리의 삶과 일상이 컴퓨터처럼 간편하게 '리셋'하거나 '복원'할 수 있는 것인지를 묻는다. 교사가 교육활동으로 선택하는 것은 재주나 순발력이 아니라는 것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아이와 나누는 한 문장의 대화, 순간적으로 교차하는 눈빛 역시 임기응변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자기단련을 반영하는 묵직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 역시 짧은 공부로는 다가설 수 없는, 오묘하고 신비한 질적 경험이다.
* 전체 강의 시간의 3분의 1정도를 할당하는 '이론'을 피해가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경험과 실천, 풍부한 사례에 근거와 힘을 보태주는 것이 이론이다. 물론 수강자 입장에서는 지루한 듣기 과정일 수도 있다. 이 과정이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려면 몇 꼭지 이론 소개 사이에 활동을 넣는 것이다. 이론과 연관된 실천 혹은 삶의 문제를 묻고, 답하고 연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내 경우 자기 소개는 한 문장으로 압축하여 넘어가고, 바로 첫 제목 슬라이드가 넘어가자마자 '활동1'을 시작한다.
제25회 교컴수련회에서 이 이야기를 깊게 나누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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