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하는 인간상과 관련하여
우선, 2015 개정교육과정 총론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의 다, 라 항을 보면, 다. 문화적 소양과 다원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 문화를 향유하고 발전시키는 교양 있는 사람, 라.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시민으로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더불어 사는 사람이라 돼 있다. 다 항에서 이야기하는 다원적 가치란 무엇일까? 쉽게 말해 세상의 모든 현상이나 이치가 한 가지로 이해되거나 해석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와 같은 입장이 아니라 해서 무시하지 말고 존중하자는 것이 다원적 가치에 대한 이해라는 말이다.
그런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는 분들은 학생들이 ‘한 가지의 객관적 사실로 배우는 역사가 올바른 것’이라고 하니 이는 교육과정 상의 추구하는 인간상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아울러 라 항의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시민’은 어떠한가? 세계는 근대적 국가주의로부터 세계인이 공존하는 세계시민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지금 지구촌에는 기후변화, 난민, 분쟁, 기아, 차별 등 일국 체제로 해결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세계사의 조류와는 동떨어진 국가주의 교육관을 강조하고 있으니 교육과정의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시민이라는 인간상을 구현하기에 들어맞지 않는다. 이미 많은 나라들에게 국정교과서에서 검정교과서로 다시 인정교과서로, 더 나아가 자유발행제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 그러한 이유이다. 21세기 선진 일류국가를 자처하는 나라에서 난데없이 국정 교과서 추진이라니 이는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이 아니다. 문제가 많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역시 문제가 많은 2015 개정교육과정이 서로 얽혀 불화하는 형국이다.
핵심역량과 관련하여
2015 개정교육과정은 역량중심 교육과정을 표방한다. 이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핵심 역량의 마, 바 항을 보면, 마.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며 존중하는 의사소통 역량, 바. 지역, 국가, 세계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가치와 태도를 가지고 공동체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역량으로 돼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분들은 위 핵심역량에 기술된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태는 한 가지의 객관적 사실로 인식되거나 기록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놓고도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토론과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합의되는 사항은 나름의 정당성을 확보하며 기록되고, 합의되지 않는 사항들은 공정하게 제시해주거나 토론 과제로 남기는 것이 학문의 바른 자세이다.
아울러 지역, 국가, 세계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가치와 태도라는 말과 국정교과서의 취지는 서로 들어맞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했듯 단일 국가 차원에서 온전하게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은 이제 거의 없다. 세계시민은 현상에 대한 이해와 비판적 사고,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회, 정서적 역량 및 정의, 비차별, 세계시민성을 바탕으로 한 참여와 행동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많다는 2015 개정교육과정 총론으로만 보더라도 역사교과서 국정교과서 추진에는 커다란 이질감이 있다.
학교급별 교육목표나,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기준을 보아도 다양한 문화활동을 즐기고(초등학교), 민주시민의 자질을 기르며(중학교),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시민(고등학교)으로서의 자질과 태도를 기르도록 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추진 과정은 다양한 의견을 민주적 절차에 따라 토론하고 합의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있다. 교육과정에서 민주시민의 자질을 기르고 세계시민과 소통하라고 하면서 ‘하나의 객관적 사실로 올바른 역사교육’을 하자고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 분들은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교육과정과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논리적으로 모순됨이 없는지 살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