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강원도 원주 북원여자중학교 과학수업. 이규태 교사가 마찰력이라는 주제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는 공개수업을 진행했다. 먼저 이 교사가 교육용 콘텐츠를 이용해 나무토막을 용수철을 이용해 끄는 가상실험을 했다. 이를 통해 마찰력에 대한 학생들의 호기심을 불러냈다. 학생들은 저마다 의문을 품고, 모둠별로 실험을 했다. 이어 모둠별로 학생 1명씩 나와 별도의 모둠을 만들어 다양한 물체로 마찰력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이 끝나자 모둠별로 또다른 학생들이 나와 과학실 옆에 있는 4대의 컴퓨터에서 관련 자료를 수집한 뒤 모둠으로 돌아가 다른 학생들한테 그 내용을 설명했다. 실험이 끝난 뒤에는 실험결과를 수계산 자동프로그램(스프레드 시트)를 이용해 나무토막과 용수철의 늘어남의 관계를 그래프로 나타냈다. 학생들은 또 나무토막의 숫자를 조절하여 용수철 길이 변화를 더욱 편리하고 세밀하게 관찰하며 마찰력의 원리를 공부하기도 했다. 이 교사는 “교육용 콘텐츠 등를 활용하면 재미있고 흥미있는 수업이 가능해 학생들의 성취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디지털 교육 콘텐츠를 활용한 수업이 학교에서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는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학습내용을 체험할 수 있고, 쉽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분명 있다. 나아가 학생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여건도 제공해 준다. 그래서 수업이 살아나고,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때문에 양질의 교육 콘텐츠가 중요하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공공기관과 민간에서 개발한 콘텐츠는 모두 4천여종으로 추정된다.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교육용 콘텐츠는 많이 개발된 편이지만 중등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적다. 2000년 이전에 개발된 콘텐츠는 인프라 부족, 학교 현장의 낮은 인지도 등으로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이제는 학교에 모두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용 콘텐츠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학교에서 확인되는 교육 콘텐츠 활용의 모습은 여전히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예전에 학교자료실에서 빌려온 비디오 테이프나 직접 제작한 그림을 학생들한테 보여줬던 방식이었다면, 요즘은 디지털 콘텐츠를 시디롬(CD-ROM)이나 인터넷을 이용해 대형 텔레비전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방법에 변화가 나타났을 뿐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학생들이 참여하고 학생의 학습동기를 부여하는 수업이 전개되고, 그 결과로 성취도가 높아졌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인 셈이다. 곧 교육용 콘텐츠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수업은 기존 수업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수 교육용 콘텐츠의를 재는 잣대로 교사중심 수업에서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쓰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렇다고 강의식 수업이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의식 수업의 가치는 존재한다. 그러나 디지털 등 변화된 교육환경 속에서 강의식 수업이 여전하고, 강의식 수업에 활용되는 교육 콘텐츠만 계속 요구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교육용 콘텐츠와 인터넷을 이용해 학생의 학습을 이끄는 학생 중심 수업을 하려는 교사의 노력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또 인터넷 자료를 공유하고 학급간, 학교간 교류도 더욱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곧 수업활동 무대가 넓어지고 시간대도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초·중등 수업현장에서 이런 변화가 주류를 형성하지는 것 같지는 않다.

교육용 콘텐츠에 주목하는 이유는 수업의 질을 높이고 학교교육의 변화를 이끌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 교육 콘텐츠의 활용수준을 높혀야 한다.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해 꾸며진 화면을 학생들한테 제시하는 강의식 수업이 아니라 학생의 활동을 강화해 더욱 활동적인 수업을 하는 데 활용돼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교육 콘텐츠가 학생들의 수업참여를 독려하고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교육용 콘텐츠를 활용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 이 콘텐츠를 통해 기존 수업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있다. 수업내용을 교육 콘텐츠 활용에 적합하게 재구성하는 것도 그런 교사의 노력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흔히 학교현장에서는 디지털 교육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또 수업 때 편하고 쉽게 쓸 수 있는 콘텐츠의 개발도 요구한다. 하지만 디지털 교육용 콘텐츠는 현실에서 쉽게 보여주기가 곤란한 내용이나 반복적으로 학생들에게 제시해 주어야 하는 내용을 골라 선택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또 수업 때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콘텐츠는 디지털화된 판서자료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 콘텐츠는 수업의 질을 높이고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가능성을 오히려 낮출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신수범/한국교육학술정보원 선임연구원 (한겨레 함께하는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