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도 썼지만 내가 공부했던 프로그램은 첫 학기에 핀란드어 과목을 필수로 들어야 했다. 외국어를 워낙 일상적으로 배우는 핀란드 사람들이어서 (대체적인 경향) 그런지 대학의 언어교육원에도 다양한 외국어 강좌가 개설되어 있고,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과 그 언어 원어민간의 language exchange도 활발한 편이다. 언어교육원에 간단한 등록 절차를 거치면 일정 학점을 인정받을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내가 갔던 당시 2011년에는 대학 내에 한국어 강좌가 없었다. 그런데 첫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보다 먼저 와서 공부하고 있던 다른 선생님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핀란드 학생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핀란드어 연습도 하고 핀란드 친구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던 터라 그 친구를 소개시켜달라고 부탁했고,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게 되었다. 이메일을 두어 번 교환한 후 드디어
직접 만난 그 친구의 이름은 살라. 160cm 가 되지 않는 자그마한 체구에 귀여운 금발머리 대학생. Turku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에서 미디어 관련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는데 배우
장근석을 좋아해서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살라는 내가 핀란드에서 만난 핀란드인들 중에서도
조금은 예외적인 범주에 속하는 친구다.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것 저것 해 본 것도 정말 많다. 3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했고, 9살에는 핀란드 전통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십대 후반 무렵부터는
같은 전통춤 클럽 사람들과 공연도 하고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민속춤 페스티벌에도 여러 번 참가했고 탭댄스도 배웠다. 뿐만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일주일에
한 번씩 Hand craft school에서 4년 동안 각종
뜨개질, 목공 등을 배웠다. 집에 있는 바구니, 카펫도 살라가 직접 만든 것들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게 직접 짠 겨울 양말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살라네 집 모녀가 모두 손재주가 좋아서 핀란드 민속 의상 만드는 법을 배워 직접 민속의상까지 만들어 입는다. 클라리넷과 핀란드 전통악기도 배웠고, 중세 검법, 태권도, 테니스도 배웠다. 지금도
엄마와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림을 배우러 다닌다. 스웨덴어, 영어는
학교에서 기본으로 배웠고, 스페인어, 독일어도 잠깐 배웠다. 일본에서 6개월 인턴십 경험 덕분인지 일본어는 능숙하게 한다. 한국에도 잠깐 여행 다녀간 적이 있고.. 헉헉… 모든 핀란드 학생이 이렇게 많은 걸 하지는 않고 자기가 좀 예외적인 경우라나.
(살라는 졸업 후 일본 방송국에 카메라 기사로 취업해 지금 도쿄에서 지내고 있다.)
아무튼.. 이렇게 살라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나와 한국어와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살라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며 서로 핀란드어-한국어를 가르쳐 주었는데, 나는 핀란드어 수업을 듣고 와서 수업 내용
중 잘 이해가 안 되거나 궁금한 것들을 묻는 식인 반면, 살라는 정식으로 공부하고 있는 (공부할 수 있는) 과정이 없어 내가 직접 가르치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인터넷 여기 저기를 뒤지며 가르칠 수 있는 학습지 등을 구해서 하다가, 좀 더 체계적으로 할 필요성을 느껴 나중에는 한국에서 한국어 교재 책을 주문해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살라는 핀란드어로 된 책이나 노래, 영화 등의 자료를 가져오곤 했는데
내가 너무 초급 단계여서 내 수준에 굉장히 어려운 것들이라 그 자료들을 지속적으로 공부하지는 못했다.
살라는 뚜르꾸 시내와는 떨어진 교외에 부모님과 집을 나란히 하고 살고 있었는데, 부활절, 크리스마스, 생일
때마다 나를 초대해 주었고 그 때마다 살라 부모님과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살라 어머니도 손재주가
좋으셔서 집 안에는 직접 만든 장식품들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살라와 살라 어머니가 한복에 관심을
보여서 나도 한복을 가져가 살라 어머니와 함께 서로 핀란드-한국 전통의상을 입어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본인
스스로의 성격을 경쟁적(competitive)이라고 한 살라는, 뚜르꾸
국제학교 의 IB (International Baccalaureat) 과정 (유럽 공통의 고등학교 과정. 시험을 치러 입학하며 영어로 진행되고
일반 핀란드 고교 과정과는 교육과정이 다름)을 졸업했다. 핀란드
학생들은 성적 때문에 비교당하고 상처받는 경험이 없을 거란 내 선입견과는 다르게, 살라는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 한 마디에 상처받은 경험을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핀란드의 기초교육은 튼튼할 지 몰라도, 고등교육 (대학) 은
정부나 기업에서 투자를 많이 하지 않는다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주로 시설적인 면을 (자기는 카메라 전공인데도 대학 내에 카메라 자체가 몇 대 없는 등) 예로
들면서.
살라와
만난 지 두어 달 후, 살라를 통해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만남은
뚜르꾸 한국어 모임의 첫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