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한 주일이 지나갔다, 거짓말처럼
가끔은 나 자신을 위로해 주고 싶을 때가 있다. 잠에서 깬 토요일 오후 지금도 그렇다. 이번 주에 힘든 일이 많았다. 물론 그 가운데는 내가 거절할 수 있었던 일도 포함돼 있다. 모든 일중독엔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세상을 구해보자는 엄청난 이유 따윈 아니어도 스스로는 귀하게 생각하는 그런 이유들 말이다.
월요일
월요일부터 바빴고, 몸도 좋지 않았다. 요즘 과로한 탓이다. 남들이 볼 때 난 늘 과로상태다. 난 그냥 견딜만하다. 그런데 내가 정말 느낄 정도로 힘들 때가 있는데 그땐 정말 힘든 거다. 그럴 땐 수액이라도 하나 맞고 전화기 꺼놓고 뻗어 있고 싶다.
월요일, 퇴근 길에 아무 생각없이 차를 뒤로 빼는데 오른쪽에서 와장창 소리가 났다. 정신 차려 오른쪽을 보니 백미러가 주차장 기둥에 걸려 아작이 났다. 어찌어찌 카센터에 가니 영업시간도 지났고, 몸도 파김치고 정신상태도 엉망이라 그냥 집으로 왔다.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일단 달려있게는 해 놓았다. 차를 써야할 이번주 일정이 수두룩빽빽인데 기분이 좋지 않다.
화요일
화요일, 테이프로 동여맨 백미러를 달고 출근을 했다. 결재와, 연수기획 검토와, 이런 저런 업무를 하다 보면 점심이다. 요즘은 점심 산책도 못하고 있다. 오후에 교육청 신청사 기술자문위원회 중간 설계 심사하러 본청으로 갔다. 꽤 많은 시간 신설학교나 교육청 시설에 대한 심사를 했지만 늘 에너지가 쓰인다. 특히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설계도면을 장시간 보는 일은 피로감을 더한다. 회의 후 간단하게 정책 미팅을 하고 카센터로 가서 상태를 보여주니 20만 3천원이 든단다. 엔진오일과 소모품 두어 가지 교환하고 나니 37만원이 나왔는데, 그건 억울하지 않다. 오로지 빼앗긴 시간에 분노할 뿐이다. (이게 일중독 증상이다. 참고하시길) 집에 오니 몇 가지 일이 기다리고 있다. 마감이 다가오는 글, 읽어야 할 글, 강의 준비 , 거기다 진도가 더딘 번역 작업 같은 것...
수요일
수요일, 고위층과 미팅이 있었다. 미팅을 위해 지난 주에 쓴 '기초학력의 미래지향적 재개념화와 정책 전환 탐색'이란 길고 재미없는 문건을 요약하여 짧고 재미없는 문서로 만들었다. 점심을 얻어 먹고 오늘의 주제에 대하여 그동안 고민해 왔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네 사람이 모였는데 다들 독특한 인연이 있다. 한 분은 30년 이상 의지하는 관계고, 한 분은 과거에 우리 청 소속으로 일을 함께 했는데 지금은 고위층, 한 분은 박사과정 동기인데 10년을 넘겨 다시 만난 준고위층... 미팅이 끝나고 30년 이상 의지하는 관계인 분과 2차 커피 미팅을 간단히 하고 다시 연수원으로.
자리를 비우면 비운 만큼 검토해야 할 일이 쌓이는 건 당연하다. 몇 가지 계획안과 현안문제를 검토하고 시계를 보니 5시. 매주 수요일 저녁은 대학원 강의가 있다. 오늘따라 차는 왜 이리 밀리는지, 오른쪽 백미러는 홀로 말쑥한 모습으로 영롱한 거울을 뽐내는데 내 기분은 우울감으로 범벅이다. 대학원 수업은 늘 비슷하다. 발표와 토론, 그리고 교수의 코멘트, 간간히 특강과 초청강의가 들어간다. 6회에 걸친 1차 발표와 토론이 오늘 끝난다. 다음 주부터 연속 3주는 특강이다. 교사대상으로 하던 강의를 대학원생용으로 전환하는 일이 기다린다.
목요일
목요일, 국가교육회의 유초중등 전문위원회 소위원회에 나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서둘러 한쪽 짜리 제안문을 작성하여 회의 장소로 간다. 이미 아는 여러 사람들을 다른 역할과 지위로 만나는 일은 새롭다. 존재가 인식을 규정한다는 말을 늘 실감한다. "사람이 한결같다"는 말은 사실 찬사가 아니다. 사람은 늘 이중 삼중의 역할 가면을 쓰고 그때마다 최선을 다 한다. 아무튼, 내 능력도 탁월하지 못하지만, 마땅히 전문적이어야 할 사람들이 그지 없이 평범한 이야기를 할 때, 실망감이 배가 된다. 교육과정 거버넌스에 대한 급진적인 제안을 진지하게 했다. 회의를 마치고 미루어 두었던 검사를 받으러 단골 의원으로 갔다. 검사 시료를 넘기고 약을 받아 들고, 전임교 교사들과의 친목모임에 나갔다. 이제 다들 늙으셔서 술도 오래 못 마시고 이야기도 생생하지 않다. 명퇴를 하신 한 분, 명퇴하고 싶지만 정년까지 가야할 한 분, 조금 젊은 분, 그리고 나, 넷이 모여 그냥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오래도록 만나야지... 뭐 이런 신파 같은 인사를 뒤고 하고 헤어진다.
금요일
금요일,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 워크숍이 있는 날이다. 여기서 교육공간 혁신 관련 강의를 하기로 돼 있어서 부여로 출발한다. 오른쪽 백미러만 반짝반짝 신났다. 부여에 도착해 예정된 강의와 토론, 그리고 저녁도 함께. 잠시 후 또 다른 준고위층이 국회 일정을 끝내고 합류. 그러니까 이런 분위기는 뭔가 그냥 동병상련 같은 거다. 혁신, 민주시민 등 가치를 추구하는 과들이 생겨났고 기존 전통적 업무를 다루는 과들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정체성 문제에 대하여 긴 대화를 주고 받는다. 아홉시나 돼서 1차는 종료. 자고 가라고 붙잡는다. 슬쩍 그럴까 하는 욕구를 자제하고 차에 오른다. 내일 이른 아침 일정이 있기 때문이다. 오다가 휴게소마다 차를 세웠다. '무지무지하게' 졸렸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한 시간 12시 반. 대충 씻고 잠자리에 든 시간은 1시. "여보 나 아침 안 먹고 6시반까지 잘 겁니다. 씻고 바로 출발하려고요.." 이렇게 부탁하고 선잠을 잤다.
토요일
토요일, 아침 아홉시, 여기는 양평에 있는 H종합연수원 강의실. 경기도 민주시민교육과가 주관하는 워크숍에 '배움의 공간혁신' 강의를 하러 왔다. 민주학교 담당자들께서 오셨다. 요즘 확실히 무리한 탓에 허리도 시원치 않고 발바닥도 따끔거린다. 아마 오늘 강의 들으신 분들은 입만 자연스럽고 몸은 부자연스러운 강사의 상황을 보셨을 거다. 강의 후 질의응답이 있었고, 몇 분 께서는 강의 예약을 하려고 한다. 나도 내 업무가 있고 이미 예약된 강의만으로도 상반기는 다 찼다.(참고하시길) 오늘 동행해 준 분이 있어 함께 점심을 먹고, 운전은 그 분께서. 난 조수석에 앉아 깜빡 잠이 들었는데 나중에 그분이 말씀하시길,
"당신 무슨 잠꼬대를 그렇게 해? 어지간히 피곤한가보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자!"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잤고, 지금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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