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창의적 민주시민을 기르는 혁신미래교육
조희연 1기 때의 비전은 '모두가 행복한 혁신미래교육'이었다. 1기 인수위 때는 다른 파트에서 활동하는 바람에 비전을 정할 때 충분히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였다. 1기 비전이 서울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담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있었다. '행복'이나 '희망' 같은 기대를 담는 추성적 어휘들이 지향의 언어로 쓰이는 것에 대해서는 따져볼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2기 출범준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몇 가지의 비전 예시를 생각하고 있다가 다음과 같이 2기 비전을 제안했다.
"창조적 민주시민을 기르는 혁신미래교육"
당연히 출범준비위원회와 자문단에서 여러 의견이 나왔다. 우선 '창조'라는 말이 뭔가 좀 어색하다는 것과, '기르는'이라는 말은 서울교육 구성원, 특히 학생들을 대상화시키는 표현이라는 것이었다. 몇 차례의 토론이 이어졌고, 함께 제출됐던 다른 안들도 모두 병기하여 보고하였다. 결과적으로 교육감님께서는 '창조적 민주시민을 기르는 혁신미래교육'을 선택하셨다. 다만, '창조'라는 말이 좋은 말이긴 하지만 뭔가 창조경제의 느낌도 있고 하니 이것만 '창의'로 바꾸자 하셨다. 이렇게 2기 서울교육 비전을 확정하였다.
"창의적 민주시민을 기르는 혁신미래교육"
물론 아직도 나는 '창조'라는 말이 가진 시대 정신을 생각한다. 창조는 상상을 토대로 무엇인가를 산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포함한다. 학교공간을 말할 때도 '학습, 일, 놀이, 쉼'이 이뤄지는 곳으로 개념화했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개념은 창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창의는 새로운 상상, 즉 사고의 층위에서 이뤄지는 개념이다. 그래서 언어를 골라 쓸 때는 언어 고유의 개념과 사회적 맥락을 잘 살펴야 한다. 좋은 말이라고 함부로 여기저기 막 쓰면 그 다음에 이렇듯 혼동을 부른다.
"민주시민을 기르는, 민주시민이 자라는"
학생들이 입장에서 주체적 표현은 '자라는'이다. 이 문제를 두고 토론이 꽤 있었다. 교육청의 비전이라(비전이 꼭 필요한가는 별도로 토론이 돼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난 구성원의 합의에 기초한 다짐은 필요하지만 국정지표와 같은 국가주의적 지향은 이제 거둘 때가 됐다고 생갃한다.) 이대로 쓰지만, 학교에서 비슷한 작업을 한다면, '...이 자라는'으로 표현하면 좋을 것이다.
"질문이 있는 교실, 우정이 있는 학교, 삶을 가꾸는 교육"
교육지표는 1기 때의 것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교실과 학교, 삶의 층위에서 다짐하고 이뤄야 할 바를 쉽고 간결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서울교육 비전과 지표는 정합적으로 더욱 들어맞게 됐다. 예컨대 질문(학습)은 창의와 붙고, 우정은 민주시민과, 삶은 혁신미래교육과 들어맞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비전과 지표의 일치도가 높다고 자평한다.
다만, 아직도 '지표'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맞는가에 대해선 의문이다. 지표는 뭔가 이뤄야 할 바를 수치화하거나 명료하게 제시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너무 강조하면 소위 지표중심 사고에 빠질 수 있다. 아마티아 센이나 누스바움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를 'GDP접근'이라 했을 것이다. 근데 줄곳 교육에서는 competence 말고 capability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참 갈길이 멀다. 역량담론이 시장주의적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capability로 써야 한다. 전에 몇 차례의 글을 통해 생각을 밝힌바 있다.
그래서 과감하게 지표라는 말을 폐기하고 '다짐'으로 바꾸어 쓰자고 제안했다. 내가 현장에 있을 때 급훈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배움터 다짐말'이라고 했다는 경험까지 들어가면 설득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지표를 그대로 쓰기로 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서울교육의 지표는 '다짐성 지표'이다.
아래 그림을 보시면 맨 아래 화분 형상에 지표가 들어가 있는 이유가 그래서이다. 다짐을 바탕으로 주요 정책방향(식물의 잎 형상)을 통해 비전을 이뤄간다는 지향이다. 사실 별 것 아닌 듯 해도 자세히 보시면 아래 화분, 중간 잎의 모양, 맨 위는 열매인데 그렇게 표현하면(열매를 그리면) 너무 직접 표현이라 이 정도에서 디자인을 마무리하였다.
이렇게 민주시민의 지향을 명확히 하는 서울교육 비전을 잡고, '평화와 공존의 민주시민교육'이라는 5대 정책방향에서 더욱 구체화하고, 교육다짐에서 질문이 있는 교실, 우정이 있는 학교, 삶을 가꾸는 교육이라 했으니, 누가 뭐래도 2기 서울교육의 중점은 '민주시민교육'이다.
에릭 리우는 시민교육의 작동방법을 'Big What Small How'로 명명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교육청은 비전과 정책방향, 그리고 기본계획에서 큰 방향을 정해 제시하는 것이 임무다. 학교단위의 실천과 교육과정, 수업, 평가 속에서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하는 문제는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학생들의 몫이다.
새학기를 앞두고 3일 동안의 교직원연수에서 '우리 학교의 바람직한 문화 형성 방안', '민주적 학교 공동체를 위한 실천 방안', '구성원의 민주적 조직문화 형성 방안', '학생자치 활성화 방안' 같은 것을 협의하면 (적은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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