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영화는 속죄를 다룬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족을 통한 대속. 기괴하면서도 도발적인 장면들이 이어진다. 제목에서 말하는 성스러운 사슴(Sacred Deer)은 누구일까. 가족 모두일 수도 있고, 자녀들일 수도 있다. 의사인 가장의 과오로 인해 가족 중 누군가 한명이 죽어야 한다면(어이없는 설정이긴 하지만 신화적 설정이자 영화의 기둥 줄거리이다), 과연 가장은 자신이 가족을 위해 죽을까, 아니면 가족 중 한 명을 찾아보려 할까. 가장은 후자를 택한다.
영화에서 단란한 가정이 그려질 때, 대부분 의도적일 수 있다. 어떤 비극의 전조라는 것이다. 화목한 가정에 드리우는 피할 수 없는 선택. 나약한 인간은 그 선택의 순간에 누구를 선택할까. 여기에서 작용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일까, 아니면 사랑일까. 다른 파국의 시작일 것이 뻔한 선택의 순간과 방법, 그리고 대상... 영화는 현실에선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그러나 어떤 현실도 이 이상은 아닐 것이라는 사건과 상황을 배치한다.
신화에서처럼 딸 대신 사슴을 제물로 택하지도 않으면서 제목에 사슴을 적어 넣은 이유는 뭘까. 아울러 Sacred Deer(자녀)들은 희생을 선택하는데, 부모는 끝까지 이성을 유지하는 이 상황은 뭘까.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영화를 지배하는 캐릭터는 마틴 역을 맡은 베리 케오간이다. (덩케르크에서 어선에 오르는 소년 역) 그가 바라는 것은 증오와 광기어린 복수심이지만 그의 표정은 시종 무덤담하다.
대배우 콜린 파렐과 니콜 키드먼을 주눅들게 하면서 스크린을 장악해 버린 소년, 베리 케오간은 이 영화의 중심 인물이면서 심판자를 은유한다. 설계자인듯 실행자인듯 무심하게 상황을 진행해가는 이 소년의 무심한 얼굴과 속절없이 무너지는 가족이 자아내는 공포가 화면을 채운다. 학교에서 가서 아들과 딸의 가치를 묻는 아빠의 행동이라니... 여기서는 마치도 선택의 순간에 총효용을 생각하는 합리적 공리주의가 생각날 정도였다.
결론은 필연과 우연의 조합이다. 속죄의 절차로써 가족 중 한 명이 죽어야 한다는 필연과, 룰렛에 맡겨 한 명을 우연하게 선택하는 것. 아빠에게 들려진 총은 심판을 상징하는 걸까. 아빠에게 선택을 강요한 것은 케오간이다. 그렇다면 케오간을 움직인 것은? 우린 화면 속 빈번한 부감(높은 곳에서 멀리 내려다 보는 카메라 기법)을 통해 누군가 더 큰 설계자가 있을 것이라는 감독의 의도를 짐작할 뿐이다.
- 킬링디어.png (568.9KB) (132)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 날짜 |
---|---|---|---|---|
[교컴지기 새책] 교사, 학습공동체에서 미래교육을 상상하다 | 교컴지기 | 43582 | 2023.02.19 07:04 | |
[교컴지기 신간] 교사, 책을 들다 [1] | 교컴지기 | 63052 | 2021.06.26 14:17 | |
[신간]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빛나야 한다 [1] | 교컴지기 | 90326 | 2019.10.23 16:05 | |
교컴지기 일곱 번째 단행본 '교육사유' 출간 [18+16] | 교컴지기 | 164696 | 2014.01.14 22:23 | |
교육희망 칼럼 모음 | 교컴지기 | 147021 | 2013.05.09 23:21 | |
오마이뉴스 기사로 보는 교컴지기 칼럼 모음 | 교컴지기 | 151143 | 2012.11.15 14:23 | |
517 | [교육정책] 교육은 정치를 알아야 하고, 그에 앞서 정치는 교육을 알아야 한다 | 교컴지기 | 4896 | 2018.08.20 10:56 |
516 | [책이야기]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 교컴지기 | 5323 | 2018.08.14 09:43 |
515 | [교사론] 학습공동체 담론의 함정 | 교컴지기 | 5255 | 2018.08.14 09:40 |
514 | [이런저런] 로즈(The Secret Scripture, 2017) | 교컴지기 | 4987 | 2018.08.14 09:38 |
513 | [이런저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 교컴지기 | 5313 | 2018.08.14 09:37 |
512 | [교육정책] 대입 공론화 결과, 퇴행을 예고하다 | 교컴지기 | 4609 | 2018.08.14 09:35 |
511 | [이런저런] Extinction(2018) | 교컴지기 | 5364 | 2018.08.14 09:34 |
>> | [이런저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 The Killing of a S | 교컴지기 | 5128 | 2018.08.14 09:32 |
509 | [책이야기] 인간성 수업(마사 누스바움, 1997) | 교컴지기 | 6783 | 2018.08.14 09:30 |
508 | [책이야기] 민주주의의 정원(에릭 리우/닉 하나우어) | 교컴지기 | 5834 | 2018.07.31 10:11 |
507 | [책이야기]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 교컴지기 | 4918 | 2018.07.31 10:09 |
506 | [이런저런] 노회찬, 참혹한 아이러니 | 교컴지기 | 4667 | 2018.07.31 10:07 |
505 | [교육정책] 교육부의 민주시민교육 과목 개설 추진에 대하여 | 교컴지기 | 5835 | 2018.07.11 07:53 |
504 | [교육정책] 교육정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교컴지기 | 5053 | 2018.07.11 07:51 |
503 | [교육정책] 교육감 선거 후,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 | 교컴지기 | 4921 | 2018.06.23 21:17 |
502 | [책이야기] 문학적 상상력과 사회적 정의 | 교컴지기 | 5052 | 2018.06.19 17:10 |
501 | [이런저런] 몸이 깨어 있는 것이 아닌 정신이 깨어 있길 원한다 | 교컴지기 | 4777 | 2018.06.11 14:52 |
500 | [교육정책] 미래지향적 행정체제에 대한 새로운 상상 | 교컴지기 | 4851 | 2018.06.11 14:50 |
499 | [교육정책] 어떤 논리도 현실 위에서 작동한다 | 교컴지기 | 4838 | 2018.06.11 13:22 |
498 | [교수학습] 다시 생각하는 평가, 관찰하고 기록하기 | 교컴지기 | 5207 | 2018.05.29 13:50 |
497 | [교수학습] 학생 참여 수업, 말뿐인 교실? | 교컴지기 | 7703 | 2018.05.24 10:03 |
496 | [교육정책] [긴급칼럼] 빠져나오기 힘든 덫, 대입시 공론화 | 교컴지기 | 4913 | 2018.05.18 16:22 |
495 | [교육정책] 나의 성적은 전국에서 어느 정도일까? | 교컴지기 | 6001 | 2018.05.14 15:38 |
494 | [교육정책] 단위 수업 당 학생 수는 몇 명을 초과할 수 없다라는 규정 [2] | 교컴지기 | 7195 | 2018.05.13 11:33 |
493 | [교수학습] 표준화 신화와 평균의 종말 | 교컴지기 | 6746 | 2018.05.13 11:29 |
492 | [교육정책] 교원(교사) 일인당 학생 수가 말하지 않는 것 | 교컴지기 | 7347 | 2018.05.13 11:24 |
491 | [이런저런] 절제와 균형 [1] | 교컴지기 | 4905 | 2018.05.10 16:13 |
490 | [교육정책] 대통령 교육공약의 후퇴를 우려함 | 교컴지기 | 4851 | 2018.05.01 10:31 |
489 | [교육정책] 어떤 공정 | 교컴지기 | 4979 | 2018.04.30 10:44 |
488 | [정치경제] 개별적 욕구와 공공의 이익이 만나는 곳, 남북관계의 경제학 | 교컴지기 | 4955 | 2018.04.29 1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