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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연필로 쓰기(김훈, 2019)
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편견과 편애, 소망과 분노, 슬픔과 기쁨에 당당하려 한다. 나의 이야기가 헐겁고 어수선해도 무방하다. - 김훈, 연필로 쓰기, 2019
역시 김훈이다. 부분적으로 나에게 실망을 주었던 때를 빼면 김훈의 글은 좋다. 얼마 전 글을 쓰는 친구와 이야기를 했는데 김훈에게 있는 '은근한 마초 근성 같은 것' 때문에 싫다고 했다. 그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 보면 여성의 몸에 관한 묘사가 있는데 그 부분에는 남성주의적 시각이라 할만한 요소들이 있다. 내가 부분적으로 실망했다는 지점도 이것이었는데, 그 디테일한 묘사도 좀 오버라고 생각했지만 그 책의 맥락에 비추어 그 꼭지가 왜 거기에 들어갔을까라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해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주 전, 이번에는 책을 만드는 친구와 대화 끝에 김훈 이야기가 나왔다. 그 친구의 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훈의 글은 좋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 친구 사이에서 내 중심을 잡아야 했다. 김훈의 은근한 남성주의를 비판하는 친구의 말에도 공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훈의 글이 좋다는 친구의 말에도 공감하기로 했다. 가끔 나의 이런 줏대 없는 행보가 싫긴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없다.
뉘라서, 독자들을 향해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생의 전모를 파악한 연후에, 느긋이 관조하는 입장이 아니라면 감히 하지 못할 말이다. 이 말이야 말로, 내 글에 대한 자존심을 결연하게 다짐하는 글이요, 독자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초월적 사고를 천명한 말이 아니던가. 내가 나이 70이 되면 그럴 수 있을까. 사실 속으로만 다짐할 뿐, 입밖으로 내지 못한다. 언젠가 썼던 "내 글이 내 맘에 들지 않으면 독자들이 아무리 성원을 해도 나는 불만이다" 따위의 글 말이다. 선언에 실천이 붙박히는 일은 어렵고도 먼 길이다.
...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
- 김훈, 연필로 쓰기, 2019
김훈이 산문집을 냈다. 제목은 <연필로 쓰기, 문학동네>. 앞 몇쪽을 읽고 이 글을 쓴다. 독후감도 중요하지만 '읽기 전 느낌'을 정리하고 싶어서다. 내 글이 비록 여물지 못해 스스로 불만이지만 남의 글을 볼 땐 내 눈이 매서워진다. 읽기 전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까지 나를 끌고 가야 한다. 그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내가 한눈을 팔거나 게을러지면, 그건 저자에게도 책임이 있는 거다. 늘 그렇듯 본인의 글이 형편 없는 자가 이런 허세를 부린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 다는 저자의 자신감이 그저 부럽다. 독후감도 비슷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 연필로.png (404.3KB)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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