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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이 우릴 미치게 한다”
▣ 이성욱/ <씨네21> 기자 lewook@cine21.com
남극의 도달 불능점은 지리적으로 남극점을 뜻하는 곳이 아니다. 가장 멀고 깊숙이 위치하고 지구 최저기온 섭씨-80도를 기록했을 만큼 험악한 지점이어서 남극의 어느 해안에서 출발하더라도 인간의 발로 정복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곳을 가리킨다. 6인의 탐험대원들이 무보급 행군으로 그곳에 이르려고 한다.
<남극일기>는 당연히 처음에 해야 할 질문을 끄트머리에 한다. 왜 불가능에 도전해야 하지? 여기에 분명히 답하는 건 최도형 대장(송강호)뿐이다. 첫 번째 답변. “아무도 해내지 못한 것을 해낼 때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럴듯한데 좀 부족해 보인다. 두 번째 답변. “남극을 이길 수 있다면 앞으로 어떤 기적도 만들 수 있어.” 이제 앞뒤가 맞아 보인다. 그에겐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어떤 자기 확신이 필요했고, 그것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어떤 일을 되돌이키고 싶어한다. 물론 이런 강렬한 욕망에는 곡절이 있고 그 사연은 남극과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갖가지 미스터리로 하나씩 서술된다.
그렇다면 남극은 무색무취의 자연이 아니라 상대가 가능한 독립된 캐릭터이어야 한다. <남극일기>를 한국 영화의 코즈모폴리턴적 도전이라 할 수 있는 건 이 지점에서다. 하늘에서 바라본 시점이든, 탐험대원의 눈에서 본 시점이든 <남극일기>의 남극은 거대한 사막의 형상이다. 모래 대신 눈과 얼음이, 고온 대신 저온이 자리바꿈을 했을 뿐 끝없는 지평선과 6개월간 지지 않는 빛나는 태양은 사막과 다를 게 없다. <남극일기>는 바이러스조차 허용하지 않는 이 얼음사막이 탐험대를 조금씩 증발시켜가는 이야기다.
그들의 영혼을 조금씩 마르게, 미치게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그러려면 남극은 살아 있는 존재이어야 하고 그들을 지켜보며 간섭해야 한다. 남극의 ‘비위’를 건드린 건 최도형 대장으로 대표되는 탐험대의 숨은 욕망이다. 영화의 승부점은 여기다. 남극과 탐험대가 어긋나고 싸우는 교차점을 어떻게 드러내고 이어갈 것인가. 눈으로 뒤덮인 숨은 함정 크레바스로 탐험대를 기습하기도 하지만, 때론 노골적인 제3의 시선으로, 때론 형체를 드러낸 호러의 모습으로 시비를 걸어온다. 그렇다고 남극이란 캐릭터가 싸움꾼은 아니다. 그는 다만 거울 구실만 할 때도 있어서 대원들의 내부에 도사린 공포와 불안을 되비춰주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더욱 대원들을 미치게 한다. 경고도 해준다. 80여년을 앞서왔던 영국 탐험대의 일기를 통해서. 탐험대는 이 메시지를 끝내 해독하지 못한다. 아니 너무 늦게 이해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미쳐가는 인간이란 테마는 흔히 ‘집’을 통해서 반복돼왔지만 <남극일기>처럼 진짜 남극처럼 보이는 드넓고 깨끗한 공간을 상대로 이 테마를 펼쳐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남극일기>를 본 어느 감독이 “장점도 단점도 많지만 이제 한국 영화의 도달 불능점은 없어 보인다”고 한 말은, 적어도 정서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다.
P.S 뉴질랜드의 설원에서 촬영했으나 남극이라 믿을 만한 풍경, 낮게 깔리는 음성에 조금씩 일그러져가는 송강호의 광기 등은 알려진 기대치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가와이 겐지가 들려주는 음악은 <남극일기>의 표정이라 해도 손색없을 색깔로 울려퍼지며, 탐험대 부대장 이영민 역의 박희순은 작은 말투와 표정만으로 미스터리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남극일기>가 예고 없이 주는 선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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