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우리 교육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이른바 학교정보화 및 교단선진화와 맥을 같이 하는 ICT 기반(또는 활용)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정보화에 기초한 지식/정보시대가 요구하는 전반적 사회현상이요 시대적 흐름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변동양상에 부응하여 ICT를 적극적으로 학교교육에 도입, 활용하자는 교육공학의 새로운 동향이나 연구개발 움직임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 교육공학도들이 함께 학교교육의 본질적 측면에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몇 가지 문제가 있다.

과연 ICT가 학교교육의 새로운 전도사나 선구자가 될 것인가? ICT를 기반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만 학교지식이 제대로 습득될 수 있으며, 학습경험의 질과 성과가 보장될 수 있을 것인가? 컴퓨터를 교실수업과정에 적극적으로 도입,활용하면 할수록 학습자중심의 수업은 실현될 수 있으며, 이 시대가 강조하는 문제해결력 및 창의력은 높아지는 것일까? 교사들은 컴퓨터를 통하여 이전보다 학생들을 정말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이며, 교수방법상의 능력이나 기술은 지금보다 훨씬 더 향상될 수 있을 것인가?

작금의 우리 학교교육의 모습은 어디를 보아도 위와 같은 문제제기에 명쾌한 답을 내려주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얼마 전에 ICT를 기반으로 한 교육정보화에서 가장 앞서 나간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되어 교육공학 분야는 물론 교육계 전반에 걸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Stanford 대학의 교육학 교수인 Cuban(2001)은 "모든 학교에 컴퓨터를 보급하면 교사와 학생들이 많이 사용할 것이고 이를 통해서 수업의 효과성과 학습의 질이 향상되어, 궁극적으로는 지식/정보사회가 요구하는 경쟁력을 갖춘 인력이 배출될 것이다"라는 ICT전도사들의 진보적 신념과 가정이 과연 정확한 것인지를 조사,연구하였다. 연구결과는 ICT가 교사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교사의 탈숙련화와 교직에 대한 만족감 저하, 학생들의 신체적/정서적/사회적 발달장애, 지적/창의적 발달의 저해 등)에서 강하게 나타났다. 한마디로 정보통신공학적 '접속'과 '지원'에 기초한 'Interface' 교육이 인간적 '접촉'과 '교섭'에 기초한 'Interacive'교육보다 더 우월하다는 증거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학교교육에서 ICT를 기반(또는 매개)으로 한 교육적 과정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재음미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컴퓨터는 교육의 과정에서 하나의 미디어일 뿐이다. 그것이 ICT의 급속한 기술적 발전에 따라 아무리 멀티미디어 시스템으로 무장되거나 하이퍼 텍스트 방식으로 구성,적용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다양한 교육방식의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일 뿐이다.

그 자체가 모든 교육의 대명사일 수는 없으며, 교육의 목적은 더더욱 아니다. 최근 교육공학의 일각에서는 웹기반교육(WBI)의 속성 중의 하나인 '인터페이스' 교육을 수업의 질과 효과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새로운 교육적 대안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일고 있는데, 이는 교육의 과정을 너무 과도하게 축약시키는 발상이다. 오히려 정보화시대 속에서 보다 근본적이고 보다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점은 '인터렉션' 교육이다. 전자가 교육의 과정에서 '기능적' 성격을 띄는 것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목적적'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본질적으로 교실수업과정에서 '정보'에 대한 습득 및 처리과정과 지식에 대한 '학습'과정은 구분되어져야 한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신속,정확하게 '접속'하고 '교류'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학습자의 학습세계로 들어와서 학습활동의 전개를 통하여 통합된 학습경험으로 승화되고 학습력(learnability)으로 구축되기 위해서는 일련의 시간과 노력이 투여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지적 작업은 교실과정 속에서 교사와의 끊임없는 '접촉'과 '교섭'을 통해서 성장하고 발달해 나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교사와의 접촉적/교섭적 상호작용을 통하여 학습자는 컴퓨터상에 존재하는 정보를 자신의 학습된 지식으로 전환시켜 나가는 것이지 정보 자체가 학습자의 지식으로 생성될 수 있거나 학습력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ICT 시대에 궁극적으로 요구되는 교육적 사안은 학습자에게 가능한 한 안정되게 세팅된 많은 정보를 빨리 습득,처리하는 능력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정보를 끌어 안고 지적으로 고뇌하고 싸우는 불안정한 자세와 태도일지도 모른다. 정보탐색과 지식생산의 주체인 학습자는 그러한 일련의 역동적 학습과정을 전제로 했을 때에만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보다 고차원적인 상상력, 창조력, 문제해결력을 신장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교사는 교실수업과정을 주도적으로 연출함에 있어서 컴퓨터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교육적 가능성과 함께 비교육적 속성과 기능에 대해서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할지라도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는 없다"는 교육계의 오래된 격언이 있다. 이 말은 학교교육이 존재하는 한 어떠한 시대와 역사에도 공통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참교육'의 진리가 아닐까 싶다. ICT시대도 예외일 수는 없다. 본질적으로 교육은 '사업'도 아니고 '패션'도 아니다. 오히려 교육은 '농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계절의 순환적 흐름 속에서 동일한 과정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그러는 가운데 성장하고 결실을 맺어가는 농사의 의미가 교육과 관련한 일을 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반성과 성찰의 기회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ICT시대의 학교교육을 교육적으로 선도해나가야 하는 우리 교육공학도들에게 "객체들의 반란과 주체들의 평정"이라는 연구주제(교육공학연구 17권2호 참고)로 관심을 모았던 한 교육공학 교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면 좋겠다.

김희배(관동대) 한국교육공학회 37회 뉴스레터 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