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밖 스튜디오
추억 - 시골 초등학생의 겨울(02) - 눈 오는 날
♣ 추억 - 시골 초등학생의 겨울(02) - 눈 오는 날 ♣ 오늘도 간밤에 눈이 내렸습니다. 어제 내린 눈이 채 녹기도 전에 눈이 와서 그늘진 골목길은 얼어서 많이 미끄러울 것 같습니다. 시골에서는 눈이 많이 내려도 길이 모두 흙이기 때문에 얼지는 않고 그냥 질퍽질퍽할 뿐입니다. 시골에 눈이 많이 내린 날은 휴일입니다. 어른, 아이 모두가 모처럼의 한가한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자질구레한 몇가지, 손길이 필요한 집안 일을 제외하면 특별히 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르신들은 구판장에서 막걸리를 드시며 담소(談笑)를 나누셨고 청장년들은 초당(草堂 - 부자집 머슴이 거주하는 작은 방)에 모여서 새끼를 꼬거나, 싸리나무 빗자루를 만들고, 대나무를 폭이 좀 넓고 얇게 잘라서 대광주리나 대바구니를 만들었습니다. 가마니와 멍석도 힘을 주어 단단하게 짯습니다. 봄철, 곧은 버드나무가지를 흐르는 물에 불려서 껍질을 벗기고 그늘에 말려 놓았던 것으로는 직사각형으로 상자를 짜서 창호지를 두껍게 발라 떡이나, 강정, 묘제(墓祭) 때 제례 음식을 담는 용도의 백양목 상자도 튼실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초등학생인 우리들은 눈싸음이나 술래잡기, 얼음지치기, 경사진 언덕에 올라가 짚단을 깔고 앉아 미끄럼타기, 자치기 등을 하며 놀았습니다. 어떤 때는 동무들 집집마다 돌아가며. 그간 해두었던 오리나무, 참나무, 소나무 통장작을 아궁이 크기에 맞게 톱으로 다시 잘라 도끼로 쪼개어 뒷뜰에 가지런히 쌓았습니다. 참나무와 버드나무는 도끼로 패면 잘 갈라졌는데 소나무는 휜 것이 많아 헛도끼질을 몇번이고 되풀이 해야 겨우 쪼갤 수 있었습니다. 같은 크기의 소나무 통장작을 동무들 수만큼 가져 와서 누가 몇 번만에 쪼개는가 내기도 했습니다. 시골에서는 초등학교 시절 부터 낫과 톱, 도끼를 잘 다룰줄 모르면 동무들이 놀렸고 놀림을 당한 동무는 이를 많이 창피하게 생각했습니다. 눈이 오면 아침에 신고 나온 나일론 양말이 눈에 젖어 발이 많이 시렸습니다. 신발도 운동화가 아닌 검정 고무신이었기에 나일론 양말과 고무신 사이에 물기가 있어 신발이 자주 벗겨졌습니다. 때문에 고무신과 양말이 더러워지면 동네 공동 우물물을 퍼올려서 혹은 개울물에 발과 고무신을 씻고 양말도 깨끗이 빨아 꼭 짜서 양지(陽地)에 말려 신었습니다. 나일론 양말이나 옷은 불에 약하고 보온도 영 신통하지 못하지만 때가 잘 묻지 않고 묻어도 잘 씻어져서 좋았습니다. 당시에는 면(綿)과 폴에스테르(Polyester) 합성 천으로 만든 내복(內服)이 가장 따뜻한 옷이었습니다. 그러나 내복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은 부잣집 자녀들이었습니다. 두꺼운 겨울 외투와 내복을 따뜻하게 입고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아이들은 정말 드물었습니다. 보통의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베틀로 짠 광목(廣木)을 손 바느질로 지은 홑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겨울이 되면 눈비가 오지 않아도 손발은 항상 시렸습니다. 특히 발가락이 새파랗게 변하며 정말 많이 시렸습니다. 장갑은 여학생들은 털실로 직접 짜서 끼고 다녔지만 남학생들은 아예 장갑을 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추운 날씨에 손등이 터서 피가 나고 아물면 또 터지기를 되풀이 하면서 그저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시골의 아이들은 손등이 많이 터져도 로션 같은 화장품을 바르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손등이 트면 요강의 오줌을 뜨겁게 데워 세숫대야에 담아 손을 푹 불렸다가 다시 깨끗하고 뜨거운 물에 손을 한 번 더 불려서 떼도 밀고 비누로 씻으면 놀랍게도 텃던 손등이 아물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어찌보면 더럽다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당시에는 손등을 아물게 하는 최고의 민간 치료법이었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손등에 안티프라민을 발랐고 귀마개, 고깔 등으로 추위를 막았지만 모든 것이 귀하고 아쉬운 시절이었기에 남자 아이들은 일상에서 부모님께 무엇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그대로 자라고 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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