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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연간 계기 교육 자료입니다

교컴지기 | 2010.03.03 13:39 | 조회 12047 | 공감 0 | 비공감 0

첨부파일은 연간 계기교육 자료입니다.

제목은 시사계기교육을 통한 한국인의 자긍심 높이기입니다.
초등학교 자료이지만 잘 활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연간계기교육자료 30은 공통으로 쓸 수 있는 자료입니다.

그리고 아래 글도 잘 정돈하여 쓰시면 좋을 듯합니다.

캡틴^^


국경일 및 기념일 계기 교육 자료

주암초등학교 


   

1. 국경일


  국가적인 경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법으로 정하여 온 국민이 기념하는 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 건국기념일,전승일(戰勝日),국왕탄생일 등을 국경일로 정하여 거국적으로 경축,기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49년 10월 1일 제정,공포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3.1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고, 매년 공휴일로 하여 국가에서 기념식을 베풀어 경축하고 있다.


1) 삼일절

     4대 국경일의 하나. 매년 3월 1일. 3·l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족의 단결을 굳게 하며 국민의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다. 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한민족은 일제의 압박에 항거, 전세계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온 민족이 총궐기하여 평화적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러한 한민족의 숭고한 자주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이 날은 기념식을 거행하며, 순국선열의 유족 및 애국운동가들로 구성된 광복회 회원들이 파고다공원에서 그날의 뜻을 되새기는 의식을 가진다,

3.1운동


 3.1운동은 한국이 1910년 일제에 합병당한 후 그들의 무서운 식민정책과 헌병경찰의 무단통치 밑에서 고통, 신음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1월 프랑스의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러 세계 개조의 큰 기운이 떠돌게 되자 민족 대표 33인의 영도 아래 3월 1일을 기하여 독립 선언서를 세계 만방에 반포하고 전국의 남녀 노소가 일제의 관헌의 총칼 앞에 맨주먹으로 총궐기하여 자주독립을 부르짖은 기미 독립운동이다.


원인


 3.1운동의 역사적 원인을 살펴보면, 군국주의 일본이 한국의 주권을 침략하고 전국토를 강점한 이래 헌병 경찰을 앞세운 일본의 총독정치는 한민족의 자유와 기본권을 박탈했고, 지도자와 애국투사들을 투옥하는가 하면, 백성들의 재산과 살림살이를 약탈해 버려 백성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여야 한다. 그들은 용산, 평양, 나남에 각기 1개사단씩 3개 사단의 육군 병력을 항시 주둔시켰는가 하면, 진해와 영흥만에 해군 함대의 요새를 설치했으며, 전국 각 지방에는 무단통치의 근간으로 헌병경찰의 사찰망을 거미줄처럼 치밀하게 쳐놓았다.

1910년경부터 1914년 사이에 설치한 일본 헌병기관이 전국을 위압하고 있었다. 경찰관서로 713개의 기관을 전국에 설치하였다. 그리고 온갖 의혹 사건과 허무맹랑한 형사사건을 조작하여 애국 지도자와 백성을 대량으로 투옥하고 고문 치사와 사형에 처하기를 예사로 하였다. 기미년 직전까지 이러한 사건의 수는 1912년에 52,00건, 1917년에 135,000건, 1918년에 142,000건으로 한국민족의 엄청난 피눈물을 자아냈다. 이러한 박해와 모욕에 대한 우리 한국 민족의 분노와 통한은 그 언제이고 기회만 있으면 폭발하고야 말 무서운 기세로 번지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가까와 오자 국제사회의 대 개편과 인류역사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때마침 1918년 1월 당시의 미국대통령 윌슨이 세계대전을 종전시키기 위해 '평화 극복안' 14개 항목 중의 하나로 '모든 민족은 원하는 형태의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이른 바 민족자결의 대원칙을 주장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한민족은 국내외의 온 겨레가 총궐기하여 정정당당하게 자주독립의 국가주권을 회복해야만 되겠다고 의연히 일어서게 되었다. 11월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후 파리에서 강화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되니 우선 미국과 상해의 애국동포들이 모여서 조국독립을 위한 힘찬 운동을 착수하였다. 이러한 소식에 도쿄의 재일 유학생들이 일본의 수도 한복판에서 2.8독립선언을 발표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의 활동이 국내로 퍼지자, 기독교에서 이승훈, 천도교에서 손병희, 불교 측에서 한용운 이하 여러분의 호응으로 긴밀한 연락 하에 각지에서 힘과 정성을 모아서 일어나게 되었다. 당시 일제는 해외 한민족의 독립운동을 막아내기 위하여 두 가지의 음흉한 계획을 추진하였다.

 첫째 매국노와 친일주구들을 이용하여 총독정치를 찬양하는 허위문서를 만들어 강화회의에 제출함으로써 한국민족 대표의 조국독립을 위한 호소를 앞질러 방해하자는 것이요,

 둘째는 일본 볼모처럼 데려간 영친왕을 거들의 황족 나시모토요시코와 강제 결혼시켜 신혼여행이라는 명목아래 파리까지 끌고가서 세계 열강의 대표들에게 이들을 일선동화의 표본으로 삼아 그들의 이목을 현혹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종께서 이의 재가와 날인을 하지 않자 고종황제를 독약으로 시해하였다. 이와 같은 무서운 음모의 내막이 서울장안에 전파되니 지금까지 쌓였던 겨레의 울분과 통한은 일시에 폭발되었고 이 비극과 분노를 기회삼아 앞서부터 준비했던 민족중흥의 위대한 기미독립운동, 즉 3·1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게 되었다.


3.1운동의 모습


 도쿄에서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이 국내로 퍼지게 되자 전국의 부형들에게 주는 충격은 컸었는데 고종황제의 국장일이 3월 3일로 다가오자 전국 각지에 인산을 구경할 겸 서울로 모여든 군중은 수만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3월 1일 정오에 민족 대표 손병희 등 33인이 서명 날인한 독립선언서가 파고다 공원에서 반포되고 남녀 학생을 선두로 한 수십만 군중의 시위행진은(대한독립만세)를 외쳐가며 온 장안을 휩쓸었다. 이 운동은 전국의 중요도시가 긴밀한 연락하에 한날 한시에 일어났던 것이다.

 한국 민족대표들은 종로 태화관에 모여서 엄숙하게 조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서로 축배를 들어 격려한 다음 일본의 경찰에 잡혀갔다.

그날의 서울의 장안은 질서 정연한 가운데 시위 행진하는 수십만 군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태극기를 들고 우렁찬 만세소리로 뒤흔들었다. 저녁때가 되자 기마 헌병과 보병부대까지 동원하여 총칼로써 그 시위를 저지하였다. 독립선언에서 표명한 민족의 숭고한 정신과 공약3장으로 천하에 약속한 고도의 질서를 지켜 가면서 정의 자유독립을 위하여 광명 정대하게 최후의 1인까지 싸우며 전진하였다.

 당시 상해의 영자신문(대륙보)의 외국인 기자 파이버는 그날의 항일투쟁 모습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왜 헌병이나 군대들은 아무리 무찌르고 쏘아도, 한결같이 한인들은 돌 하나 던지지를 않았다. 남녀 학생들은 맨주먹으로 총칼 앞에 가슴을 내대며 턱을 쳐들고 돌진하였다. 왜경과 헌병들은 굶주린 호랑이떼 같이 붉은 피를 뒤집어 쓰고 뛰어 다니며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고 발길로 차서 수 없는 한인을 죽였다. 그러나 군중들은 더 한층 맹렬하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왜경들에게 대항했다." 이해 4월에 해외·내의 민족 대표들은 상해의 프랑스 조계로 모여들어 임시원을 조직하여 대한민국을 건립하는 첫 단계로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임시 헌법도 제정하였다. 그리하여 대한 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숭고한 항일 투쟁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그들의 인식을 새롭게 하며 주의도 환기시켰다.

 그 당시(3∼5월)의 희생과 손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각지의 시위운동의 집회수 :1542회, 운동에 동원된 인원수 : 2백 2만 3천명 살해된 인원수 :70,509명 부상당한 인원수 : 15,961명 검거당한 인원수 : 46,948 적에 의해 소실된 교회당수 : 47개소 소실된 학교수 : 2개소 소실된 민가수 : 715호 이상과 같은 한민족의 희생을 내기에 잔인무도한 일제의 경찰과 군대는 갖은 만행을 실제로 자행했던 것이다.


결과


 그 역사적 성과를 살펴보면

 첫째 자유와 독립을 죽음으로써 찾을 줄 아는 대한민족은 고도의 문화민족임을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잔인무도한 일제측이 진실로 야만이요, 또 무능하다는 것을 세계에 폭로하였다.

 둘째, 이 운동을 통하여 한국민족은 민주조국인 대한민국을 건립할 수 있었으니 왜적의 침략을 배제하고 새 나라를 이룩하되 군주제도를 청산하고 민주공화국을 건립하게 된 것은 3.1운동의 위대한 정신에서 미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이 운동을 통하여 세계는 비로소 한국문제의 해결이 없이 동양이나 세계의 평화도 바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넷째, 오늘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헌법이 기미 독립정신을 그 건국의 모체로 규정하게 된 것도 역사적으로 필연적 결론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독립 선언문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야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써 자손만대에 고하야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유하게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장하야 차를 선언함이며, 2천만 민중의 성충을 합하여 차를 포명함이며, 민족의 항구여일한 자유발전을 위하여 차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의 발로에 기인한 세계개조의 대기운에 순응병진하기 위하야 차를 제기함이니, 시 천명의 명명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인류 공존 동생권의 정당한 발동이라, 찬하하물이든지 차를 저지억제치 못할지니라.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작하야 유사이래 누천년에 처음으로 민족 겸제의 통고를 상한 지금에 십년을 과한지라. 아릇 기하이며, 신예와 독창으로써 세계문화의 대조류에 기여보비 할 기연을 유실함이 무릇 기하이뇨. 희라, 구래의 억울함을 선창하려 하면, 시하의 고통을 파탈하려 하면, 장래의 협위를 삼제하려 하면, 민족적 양심과 국가적 염의의 압축소잔을 흥분신장하려하면 각개 인격의 정당한 발달을 수하려하면, 가련한 자제에게 고치적 재산을 유여치 아니라혀 하면, 자자손손의 영구 완전한 경복을 동영하려 하면 최대 급무가 민족적 독립을 확실케 함이니 이천만 각개가 인마다 방촌의 인을 회복하고 인류통성과 시대양심이 정의의군과 인도의 간과로써 호원하는 금일 오인은 진하야 취함에 하강을 좌치 못하랴 퇴하야 작함에 하지를 전치 못하랴.

 병자수호 조류이래 시시종종의 금석맹약을 식하였다 하야 일본의 무신을 죄하라 아니하노라. 학자는 강당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아조종세업을 식민지시 하고 아 문화민족을 토매 인우하야 한갖 정복자의 쾌를 탈할 뿐이요 아의 구원한 사회기초와 탁락한 민족심을 무시한다하야 일본의 소의함을 책하려 아니 하노라, 자기를 책려하기에 급한 오인을 타의 원우를 가치 못하노라. 현재를 주무하기에 급한 오인은 숙석의 징변을 가지 못하노라.

 금일 오인의 소임은 다만 자기의 건설이 유할 뿐이요 결코 타의 파괴에 재치 아니하도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가의 신운명을 개척함이요 결코 구원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타를 질축배척함이 아니로다. 구사상 구세력에 기미된 일본 위정가의 공명적 희생이 된 부자연 우불합리한 착오상태를 개선 광장하야 자연 우합리한 정경대원으로 기한케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써 양국합병의 결과가 필경고식적 위압과 차별적 불평과 통계수자상 허식의 하에서 이해 상반한 양민족간에 영원히 화동할 수 없는 원구를 거익심조하는 금래 실적을 관하라. 용명과감으로써 구호를 곽정하고 진정한 이해와 동정에 기본한 우호적 신국면을 타개함이 피차간 원화 소복하는 첩경임을 명지할 것 아닌가. 또, 이천만 함분축원의 민을 위력으로써 구속함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소이가 아닐 뿐 아니라 차로 인하야 동양안위의 주축인 사억지나인의 일본에 대한 위구와 시의를 갈수록 농후케하야 그 결과로 동양 전국이 공도 동망의 비운을 초치할 것이 명하니 금일 오인의 조선독립은 조선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영을 수케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사로로서 출하야 동양지지자인 중책을 전케하는 것이며 지나로 하여금 몽매에도 면치못하는 불안공포로서 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평화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하는 것이라 이어찌 구구한 감정상 문제리요.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래하도다. 과거 전세기에 연마장양된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신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에 투사하기 시하도다. 신춘이 세계에 래하야 만물의 회소를 최축하는도다. 동빙한설에 호흡을 폐칩한 것이 피일시의 세이라하면 화풍난양에 기맥을 진서함은 차일시의 세니 천지의 복운에 재하고 세계의 변조를 승안 오인은 아무 주저할 것 없으며 아무 기탄할 것 없도다.

 아의 고유한 자유권을 호전하야 생왕의락을 포향할 것이며 아의 자족한 독창력을 발휘하야 춘만하대계에 민족적 정화를 결뉴할지로다. 오등이 자에 분기하도다. 양심이 이와 동존하며 진리가 아와 병진하는도다. 남녀 노소없이 음울한 고소로서 활발히 기래하야 만휘군상으로 더불어 흔쾌한 부활을 성수하게 되도다. 천백세 조령이 오등을 음우하며 전세계 기운이 오등을 의호하나니 착수가 곧 성공이라 다만 전두의 광명으로 맥진할 따름이저!

공약 3장


1. 금일 오인의 차거는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하지 말라.

2.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정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3. 일체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야 오인의 주장과 태도를 하여금 어디까지든지 공명정대하게 하라.


조선 건국 사천이백오십이년 삼월 일일


조선 민족 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성릉,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룡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휸,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 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명상의 시간 운영자료

 여러분!

 명상의 시간입니다.

 오늘은 방정환 선생님께서 지으신 형제별이란 시를 감상해 봅시다.


날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지내이더니

웬일인지 별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 별이 둘이서 눈물 흘린다.


 지금부터 약 년 전 우리 나라는 국민 각자의 맡은 일을 성실히 하지 못하고 태만하다가 섬나라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그 후 수많은 선열들이 피나는 노력과 희생으로 광복을 하여 나라를 다시 찾은 것입니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는 국민 모두가 슬프고 쓸쓸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지냈습니다. 많은 노래들 역시 하나같이 슬픈 내용이었습니다.

 이 노래의 뜻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의좋게 자라던 삼형제가 형제를 잃은 슬픔은 큽니다. 날 저무는 하늘은 바로 나라를 빼앗긴 우리 나라를 뜻합니다.

 삼일운동으로 많은 희생자를 낸 우리 민족의 슬픔이 그대로 나타나 있어 나라의 그리움 때문에 울면서 지은 노래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떳떳한 내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 조용히 생각해 봅시다.


예화 자료 1

 1919년 3월 1일은 우리의 현대민족사에서 실로 웅대한 뜻을 편 뜻깊은 날이다. 1910년 8월 29일 이웃 일본은 우리 나라를 강제로 빼앗아 저희들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 후 일본은 총독부라는 것을 설치하고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강제로 빼앗으며 우리 민족을 짐승보다도 못하게 취급하였으며 총칼로 다스려 왔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우리 애국 지사들은 저마다 독립 운동에 앞장서게 되었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전에 파리 강화 회의에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 원칙 발표는 압박 받는 민족에게 큰 희망을 던져 주었다.

 이 같은 세계 역사의 흐름에 발을 맞춰 손병희 선생 등 33인의 민족 대표가 중심이 되어 서울의 파고다 고원에서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고 시위에 들어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이 운동은 왜적의 총칼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6개월 동안 계속 되었으며 사상자 수가 2만 5천, 감옥에 갇힌 사람이 4만 7천에 달하였다.

 독립 운동은 계속되어 1919년 3월 1일 전국에서 일제히 우리 민족이 일어나 독립만세를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우리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사랑하는 민족정신의 발로이며 문화 민족의 얼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날을 길이 빛내고 애국애족심과 자주 독립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1949년 10월 1일에 법률 제53호로서 삼일절을 국경일로 정하였다.

예화 자료 2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의미가 있는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당할 때마다 그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삼일운동은 우리 민족의 역사상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동방의 백의 민족, 우리 겨레가 반만년 역사를 통하여 허다한 다른 민족들과 더불어 칼부리를 맞대면서 민족의 생존을 위해 피의 항쟁을 쉬어 본 적이 거의 없었지마는 국토가 남의 손에 모두 빼앗기게 되었고 국민 전체가 큰 환란을 당하기는 다만 일제에게서요, 그러기 때문에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온민족이 단합하여 울부짖던 때도 일제 때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자극된 민족의 자각이야말로 우리 문화사상 위에 커다란 분수령이 되는 고비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나는 오늘 삼일절의 의미를 세가지로 나누어 말하고자 합니다.

 첫째 : 삼일운동은 갈래 갈래 떨어져 흩어졌던 우리 겨레가 하나가 되었던 운동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으며

 둘째 : 사람은 육신적인 '나'와 정신적인'나'가 하나가 되어야 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우리 겨레는 정신적인 '나'를 잃어버리고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에 정신적인 '나'를 찾아 준 기본적 인권 선언이란 점에서 깊은 의미가 있으며,

 셋째로 : 이 운동은 평화적 정신에서 추진되었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독립선언서에 있듯이 어디까지나 남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임무를 다하기에 진력할 것이며 파괴를 떠나서 질서있는 행동을 휘할 것을 선언하였습니다.세계의 모든 혁명이 총이나 칼로 피를 흘리면서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였습니다. 삼일운동에서는 몽둥이 하나 들지 않고 태극기만 든 채 평화적인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입니다.

 삼일운동이 곧 우리 겨레에게 자유와 독립을 안겨다 준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민족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독립 의지를 더욱 굳게하는 조상들의 값진 피흘림과 노력이 있었기에 제24회 서울 올림픽을 동서남북이 한 자리에 모여 화합의 잔치를 가장 훌륭하게 치룰 수 있는 오늘을 사는 우리로 탄생시키게 된 것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이 삼일절을 기하여 우리 겨레가 또는 세계인이 하나가 되는 것을 배우고 참되고 힘차게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도록 서로 노력합시다.




2. 제 헌 절


   제헌절은 우리 나라 4대 국경일의 하나로 1948년 7월 17일 우리 나라 최초의 민주헌법이 우리 손으로 제정 공포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헌법제정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정부에서는 이날 제헌의원들을 비롯한 각계 유공인사를 초청하여 각종 기념행사를 갖는다. 공휴일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나라의 정치는 어떠한 형태로 하여야 하는가? 국민의 권리나 의무는 어떠한 것인가를 정한 국가정치의 근본이 되는 나라의 으뜸법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헌법이 만들어진 경위로는 1910년 한일합방이 된 후 36년간의 식민지 정치 밑에서 신음하던 우리 조상들은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미·소 양국의 군정을 겪은 후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려 했으나 북한측의 반대로 1948년 5월 10일 UN의 감시하에 남한만의 총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을 뽑아 국회를 구성하고, 5월 31일에는 제헌 국회가 소집되어 헌법 기초위원 30명과 전문위원 10명을 선출할 것을 결의하고 이에 따라 6월 3일에 헌법 기초 위원이 선출되고 전문위원이 위촉되었습니다.

 이리하여 6월 3일부터 6월 22일 까지 유진오박사의 초안을 중심으로 16회에 걸친 회의를 하게 되었고 6월 23일 본 국회에 상정되어 3차에 걸친 독회가 끝난 후 국회를 통과하였으며 7월 17일에 공포되어 그날부터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헌법은 제5공화국의 출범과 더불어 8차례에 걸친 개헌을 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1949년 6월 4일 대통령령 제124호에 의하여 국경일로 명명되었습니다.

 헌법의 개요

1948년 7월 17일 헌법제정 공포

해방후 3년간 미군정이 실시

1948년 5월 10일 총선거 실시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소집

1948년 6월 3일 유진오씨의 초안 심의 결정

1948년 7월 7일 국회에서 통과

1948년 7월 17일 전국에 공포된 즉시 실시

 

 

 

 


 우리나라 헌법의 3가지 기본 정신

민족주의

민주주의

국제 평화주의


 명상의 시간 운영자료

 여러분!

 조용히 눈을 감고 방송에 귀를 기울이세요. 오늘은 우리나라의 헌법이 제정된지 ( )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 학교에도 여러 학생들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규칙과 약속이 있듯이 나라에도 온 국민이 지켜야 할 법률을 만드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헌법이 있습니다. 서기 1948년 7월 17일에 헌법이 공포됨으로써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은 주권자로서 법률 앞에 평등하게 되었고 신체의 자유와 아울러 출판 언론 집회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당한 민주 국가의 국민임을 세계 곳곳에 자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국토의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헌법이 제정되었나를 돌이켜 보는 동시에 부지런히 공부하여 세계 다른 나라에 뒤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법을 지키고 법을 따를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나라를 더욱 빛나게 하고, 날아가서는 인류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또한 아무리 훌륭한 법이 있어도 이를 잘 지키지 않는다면 그러한 법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고 그런 국민이 있는 나라는 끝내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법을 잘 지키는 정신을 '준법정신'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은 무척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법을 위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민주시민으로 법을 잘 지키는 사람만이 그에 따르는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준법정신을 기르도록 합시다.

 예화 자료 1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제정 공포한지 ( )돌을 맞이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헌법이란 여러분이 학교에서 지켜야 할 여러 가지 학교규칙이나 약속이 있듯이 나라에도 온 국민이 지켜야 할 법률을 만들어 제정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법입니다. 우리나라의 헌법은 우리 나라가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광복의 달을 맞이한 후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실시하여 제헌 국회를 구성하고 여기에서 대한민국 헌법이 완전히 통과되어 1948년 7월 17일에 공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날을 기념하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법을 소중히 알고 법을 지키려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법을 지키는 것은 학교규칙이나 부모님, 친구, 선생님과의 약속, 교통규칙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은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있고 질서 있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어린이 여러분! 오늘 뜻깊은 제헌절을 맞이하여 빠짐없이 국기를 게양하고 더욱더 준법생활에 힘쓰는 어린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광 복 절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 8월 15일.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어 우리나라가 독립하였고, 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49년 10월 1일 이 날을 광복절이라 하고 국경일로 정하였다(법률 53).

 광복절의 유래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의미있는 경축의 날이기도 하지만 1948년 8월15일 우리 대한미국의 정부가 수립된 것을 공포한 경축일이기도 하다.

 1895년 강화도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간섭을 받아 오던 우리 나라는 청일,노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에 의해 1910년 8월 29일 합방되고 말았다.

 36년간의 생활은 너무도 굴욕적이고 비참하였다. 우리의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강제 노동과 강제징병, 징용에 시달리며 우리의 역사, 언어, 문자까지도 탄압에 굴복 당하였다. 그뿐 아니라 심지어 이름과 성도 일본식으로 고치게 하였고 전쟁물자와 식량의 공급을 위한 각종 약탈을 감행하여 괴롭혔다.

 이와 같은 온갖 탄압 속에서 조국광복을 위한 지하운동을 맹렬히 벌렸으며 해외에서는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광복군 등의 조직에 의하여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한편 1943년 11 월 카이로 회담을 통하여 미,영,중의 원수가 모여서 우리의 독립을 밝혔고 1945년 7월의 포츠담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하였다.

 1945년 8월 히로시마 나가사끼에 떨어진 원자탄의 위력에 놀란 일본은 그 달 15일에 무조건 항복을 하였으며 아울러 우리는 해방을 맞이한 것이다.

 민족 해방과 대한민국의 건국

 일제말기에 10년간 우리는 일본의 혹독한 학정을 받아왔다. 일본은 만주를 침략하면서부터 많은 군수품을 필요로 하였다.

 따라서 농업에 중점을 두던 한국의 산업을 바꾸어서 군수공업과 광업에 치중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싸움을 넓혀가는 동안 한국을 병참기지로 삼아 더욱 식량과 원료를 약탈하였다.

 한편 일본은 우리의 민족의식과 문화를 완전히 없애버리고 민족을 말살하려는 수작을 하였다. 한글을 쓰지 못하고 일본말을 사용하게 강요하였고, 황국 신민의 서사라는 것을 외우게 하여 우리의 성명까지도 일본식으로 고치게 하였다.

 그후 전쟁이 일본에 불리해지자 일본은 사람들까지도 마구 징벌하였다. 지원병 제도를 만들어 청년들을 속여서 일선으로 끌어가고 다시 징병제도니 학병이니 하여 모든 청년과 대학생을 끌어가기 시작하였다. 또 청년장년을 군사실과 군수공업 또는 탄광으로 끌고가서 강제노동을 시켰다.

 일제가 최후 발악을 하고 우리가 사선에서 허덕일 때도 비밀히 지하운동을 통하여 민족의 해방을 꾀하는 여러 지사가 있었다. 해외에서도 임시정부 등의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고 광복군 등의 군대를 조직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1943년 11월에 미국,영국,중국의 3국 원수는 카이로에서 회의를 열어 일본의 영토 문제를 토의하고 카이로 선언을 하였다. 이 선언은 특히 한국을 독립시킬 것을 밝혔다.

 1945년 7월의 포츠담 선언은 한국의 독립을 약속한 카이로의 결의안을 재확인하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와 떨어진 원자탄의 위력에 놀란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였다.

 1945년 8월 15일은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한 날인 동시에 우리가 해방된 날이었다. 8,15 해방은 우리에게 곧 독립까지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북위 38도선을 징계로 하여 이북에는 소련군대가 진주하여 각각 군정을 펴려고 하였다.

 남북은 두 세력의 대립으로 인하여 화해하지 못하고 뜻하지 않게 국토와 민족과 사상이 둘로 갈라져 대립하게 되었다. 남한의 민주진영은 유엔의 협조를 얻어 전국민의 자유의사 대로 남북을 통한 총선거를 실시하여 국토를 통일하고 주권을 회복하려 하였으나 소련과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반대하였다. 이에 유엔은 1948년 2월 가능한 지역부터 선거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1948년 5월 10일 유엔 한국위원단의 감시밑에 남한에서 역사적인 총선거가 단행되었다. 그 결과 국회가 소집되고 헌법이 제정되어 초대 대통령으로서 이승만 박사가 취임하여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자유민주의 국가로서 발족한 대한민국은 1948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 받았다.

 명상의 시간 운영 자료

 여러분!

 명상의 시간입니다.

 우리 나라는 해마다 이날 8월 15일을 국경일로 삼고 여러 행사를 가집니다. 올해도 여러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온 대한 민국의 학생, 그리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기쁜 이날을 축하는 것입니다. 새장에 갇혔던 새가 푸른 창공을 마음대로 날 수 있게 된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것은 덮어놓고 나쁘고 제 것만 제일이라는 배타적이고 또 독선적인 생각이 깊이 뿌리 박혔습니다. 그 결과 우리 나라의 사람은 자기 스스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고 남의 나라 지배만을 받으면서 살아왔습니다.

 이와 같이 나라의 독립을 잃고 남의 지배를 받게 되면 그 민족은 억눌림에 시달림을 받게 됩니다. 일본의 압박이 심해져 가고 우리의 말과 글마저 빼앗으려 할 때, 여러분도 잘 아는 3,1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대한 독립을 외치다 숨이 진 유관순 열사도 바로 이 때의 사람입니다.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하여 우리 선열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대한 독립을 외쳤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 민족의 외침은 온 세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때 일본은 흉칙한 일을 욕심이 들어나 세계 여러 나라의 전쟁을 시작하였으나 항복하였습니다. 그 즉시 우리 나라는 행방된 것입니다. 저3.1운동은 우리 민족의 한 덩어리로 뭉친 힘이었고 그것은 민족의 생명이요 교훈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침내 우리 민족이 오늘 같은 기쁨을 가져온 것입니다. 어린이 여러분은 이점을 깊이 깨닫고 더 열심히 몸과 마음을 닦아 힘을 길러야 합니다.

 예화 자료 1

오늘은 일제의 쇠사슬에 풀려나 조국의 광복을 찾은 날입니다. 1875년 강화도 사건을(운요호사건)계기로 그 이듬해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후 우리 나라를 둘러싸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1910년 8월 29일 강압적으로 합방하여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36년 간 식민지 생활로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갖은 쓰라린 고통을 겪었습니다. 나라없는 슬픔과 그 치욕을 어찌 말로 다하겠습니까?

 일본은 우리 나라 침략에 만족치 않고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을 일으키어 전 동양을 차지하려는 침략전쟁을 일삼았을 뿐 아니라 태평양전쟁(1941)을 일으키어 연합군과 싸우다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그들은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일본은 패망으로 드디어 우리는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는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국내외에서 줄기차게 활약한 애국지사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비극이 찾아 왔습니다. 38선이 그어졌고 분단의 쓰라림을 겪어야 했고 그 뿐만 아니라 김일성의 남침으로 동족간에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지금도 김일성은 기회만 있으면 남침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길은 총력안보 태세로 굳게 뭉쳐 힘을 기르는 일입니다. 일본은 오늘날 어떠합니까? 식민지 활동을 정당화하고 교과서 왜곡 등을 일삼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가 잘살고 국력이 부강해질 때 모든 것은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애국하는 길을 생각해 보고 실천에 옮기도록 노력합시다.

 개 천 절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이 개국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 10월 3일.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하여 이 날을 개천절로 정하고 국경일로 하였다. ‘개천’의 본래의 뜻은 단군조선의 건국일을 뜻한다기보다는, 환웅(桓雄)이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처음으로 하늘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BC 2457년(上元 甲子年)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날을 기리는 거족적인 제천의식은 먼 옛날부터 전래되었으니, 부여의 영고(迎鼓), 예맥의 무천(舞天), 마한과 변한의 계음(契飮), 고구려의 동맹(東盟), 백제의 교천(郊天), 신라와 고려의 팔관회(八關會) 등에서 행하여진 제천행사에서 예를 찾을 수 있다. 개천절은 1909년 나철(羅喆)에 의해 대종교(大倧敎)가 중광(中光:다시 敎門을 엶)되면서 경축일로 제정하고 해마다 행사를 거행하였다.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하고 중국으로 망명한 대종교와 합동으로 경축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이를 계승하여 개천절을 공휴일로 정하고 그때까지 경축식전에서 부른 대종교의 ‘개천절 노래’를 현행의 노래로 바꾸었다. 그러나 음력 10월 3일을 양력으로 환산하기가 어렵고, ‘10월 3일’이라는 기록이 소중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49년부터 양력 10월 3일로 바꾸어 거행하였다.

홍익인간의 개국이념을 계승하고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통일의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며 자손만대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함.



♠ "음력 10월 3일 開天"의 뜻

서력기원전 2333년(단기 1년) 우리 민족의 시조(始祖)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朝鮮)을 건국하신 날임.

단군의 아버지이신 환웅(桓雄)께서 홍익인간(弘益人 間)의 큰 뜻을 품고 하늘을 열고 이 땅에 하강하신 날이기도 함.♠ "음력 10월 3일 開天"의 뜻

서력기원전 2333년(단기 1년) 우리 민족의 시조(始祖)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朝鮮)을 건국하신 날임.

단군의 아버지이신 환웅(桓雄)께서 홍익인간(弘益人 間)의 큰 뜻을 품고 하늘을 열고 이 땅에 하강하신 날이기도 함.

♠ 개천절의 유래


【고대이후 대한제국까지】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고려 의 "팔관회" 등 민중 제천 축제

고려 중엽부터 외세 침략으로 개천 의식(儀式)이 약 화되었으나 몽고제국(蒙古帝國)의 침략을 받았던 때에 는 이 단군고사가 민족의 대동단결 의식(大同團結 意 識)을 깨우쳐 국난을 극복하는 힘으로 작용

조선왕조(朝鮮王朝)가 새로이 개창(開創) 되자 우리 민 족의 단군숭배사상(檀君崇拜思想)은 더욱 고양(高揚)- 태종(太宗) 때의 문신 변계량(文臣 卞季良)은 "우리 동방(東方)의 시조 단군은 하늘로부터 내려와 나라 를 세운 것이지, 중국의 천자(天子)가 분봉(分封)한 것이 아니다" 라고 하여 우리나라가 예전부터 중국 과 대등한 독립국가임을 천명 - 세종(世宗) 때에는 평양에 단군사당(檀君祠堂)을 마 련하였고, 중국의 황제와 마찬가지로 원구단(圓丘 壇)을 세워 하늘에 제사

한말(韓末) 열강(列强)의 세력이 몰아치던 시련기(試 鍊期)에 고종황제(高宗皇帝)가 대한제국(大韓帝國)을 내외에 선포하고 환구단( 丘壇)을 설치하여 천제(天 祭)를 올림.


【일 제 시 대】

1909년에 나철(羅喆)이 대종교(大倧敎)를 일으켜 음력 10월 3일을 개천일이라고 명명하고 종교의식 봉행

1919년 3·1운동 직후 수립된 상해임시정부에서 개천 절을 국경일 (음10.3)로 경축


【정부수립 이후】

1948년에는 개국기념일로서의 개천절 경축행사를 음 력 10월 3일에 거행

1949년 "국경일에관한법률" 제정에 따라 개천절(양 10.3) 행사거행


 명상의 시간 운영자료


고려시대의 중 일연의 지은 삼국유사의 의하면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가고 싶어하므로 하느님께서 이를 허락하시었습니다. 환웅은 기뻐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시며 내려갈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 땅을 내려다보신 환웅은 가히 인간이 살만한 곳이라 하여 하느님께 청하였던 바, 하느님께서는 환웅으로 하여금 내려가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환웅은 무리 2000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오니 이 곳을 신시라 하였습니다. 이 때 웅녀가 여자의 몸으로 변하여 혼인하고 단수(박달나무)아래에서 아들을 낳으시니 이를 단군왕검이라 하였습니다. 오늘날 과학적으로 생각할 때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여겨지지만 민족발생에 대하여 어느 나라이고 이러한 신화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어떻게 시작되었나 하는 것을 옛날 우리 조상들이 생각하여 전하는 신화로 여기에는 우리 겨레의 이상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썼던 연호도 단군이 나신 해부터 따진 것이며 반만년의 긴 역사를 쌓게 된 것입니다. 다른 민족에게 굴복하여 완전히 그들에게 도화 또는 소멸된 일이 없는 동양사에 있어 기적적 끈기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근원을 더듬고 단군의 건국 이념을 살피고 조국 근대화의 대과업을 완성하여야 할 우리의 임무와 사명을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하면서 홍익인간의 정신을 체득하고 발휘함으로써 하루 빨리 조국의 통일을 이루고 억만 대의 후손을 물려 줄 찬란한 문화를 이룩하여 행복과 번영의 나라를 건설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남북한이 단일민족으로 기필코 통일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민족중흥에 앞장설 것을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어린이 날


 1923년 소파 방정환 선생의 주창으로 창설되어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해방과 함께 기념하게 되었다.

 소파 방정환 (1900 - 1932)


1900년 10월 7일 서울 당주동에서 출생, 10세때 소년 입지회 모임.

20세(3.1운동시)에 "신청년 신여자 녹성"등의 잡지를 만듦

21세에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하여 여름방학중 어린이운동 계몽차 전국을 순회함

1956년 아동문학협회에서 어린이 헌장을 제정 공포하게 되었음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 (1988.5.5 개정 선포)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은 어린이날의 참뜻을 바탕으로 하여, 모든 어린이가 차별없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니고 나라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사람으로 존중되며,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길잡이로 삼는다.


어린이는 건전하게 태어나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속에 자라야 한다.

어린이는 고른 영양을 취하고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받으며, 맑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

어린이는 좋은 교육시설에서 개인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한다.

어린이는 빛나는 우리 문화를 이어받아 새롭게 창조하고 널리 펴 나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

어린이는 즐겁고 유익한 놀이와 오락을 위한 시설과 공간을 제공받아야 한다.

어린이는 예절과 질서를 지키며, 한겨레로서 서로 돕고 스스로를 이기며 책임을 다하는 민주 시민으로서 자라야 한다.

어린이는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는 마음과 태도를 길러야 한다.

어린이는 해로운 사회환경과 위험으로부터 먼저 보호되어야 한다.

어린이는 학대를 받거나 버림을 당해서는 안되고, 나쁜 일과 힘겨운 노동에 이용되지 말아야 한다.

몸이나 마음에 장애를 가진 어린이는 필요한 교육과 치료를 받아야 하고 빗나간 어린이는 선도되어야 한다.

어린이는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이다.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한국인으로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세계인으로 자라야 한다.


 명상의 시간 운영 자료

 어린이 여러분!

 어린이날 명상의 시간입니다.

 사랑스러운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뜻깊고 복된 제 회 어린이날입니다. 이날은 겨레의 꿈이요, 나라의 보배인 어린이들을 축복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 날은 착한 마음가짐과 성실한 생활을 어린이들 자신이 굳게 다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들이 환한 모습으로 자라는 것을 볼 때마다 한없는 기쁨과 함께 마음 든든함을 느낍니다.

 여러분들이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 시간, 한 시간이 과학실에서 시험관을 들여다보고 있는 한시간 한시간이, 그리고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는 한시간, 한시간이 모이고 쌓여 우리 나라 앞날의 우람한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민족 중흥이란 큰 사명을 띠고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갖은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애쓰고 있습니다. 이일은 우리 어른들이 시대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십년 이십년 후에는 여러분들도 함께 참가해야 할 역사적인 나라일인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받드는 마음도 어려서부터 가슴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어린이 여러분1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직접 맡아 움직여가는 훗날, 우리 나라는 온 누리에 즐거운 빛을 펼치는 힘찬 나라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날을 약속하며 365일이 송두리째 어린이날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어린이 여러분의 앞날을 축복합니다.



 예화 자료 1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뜻깊고 복된 제 회 어린이날입니다.

 겨레의 꿈이요, 나라의 보배인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는 어린이날은 1923년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처음으로 만드셨습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들을 무척이나 귀여워하셨으며 어린이들이 올바르게 자라도록 애를 쓰셨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노래와 동화도 많이 지으시고 어린이들을 건강하게 기르자고 외치셨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지금 우리 나라는 올림픽을 개최한 만큼 부강한 나라로 발전하여 세계 모든 나라에 우리 한국이 알려졌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 나라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주인입니다. 여러분들이 훌륭한 주인,의젓한 주인이 될 때 우리 대한 민국은 선진국으로 발전해 나가게 될 것이며 힘있고 위대한 나라로 세계에 빛나게 될 것입니다.

 예화 자료 2

 오늘 뜻깊고 복된 제 회 어린이날입니다. 이 날은 착한 마음가짐과 성실한 생활을 학생들 자신이 굳게 다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자유의 빛 속에서 공부하고 뛰놀며, 씩씩하고 구김살 없이 자라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한없는 기쁨과 함께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 나라의 어린이날의 기원은 소파 방정환 선생의 제창으로 1923년 5월 1일에 첫 어린이날 행사를 갖고, 그 뒤 해마다 5월 1일(뒤에는 5월의 첫 공일)을 기하여 다채로운 행사를 거듭하면서 3.1운동 후 각지에서 조직된 소년단체를 규합하여 어린이들의 민족정신을 함양함에 노력하였던 것이다. 이런 어린이날의 성격으로 말미암아 결국 일제의 탄압이 미쳐 1937년 제16회를 끝으로 1938년부터는 행사를 갖지 못하였고 8.15 해방 후 1946년에 어린이날 전국 준비 위원회가 결성되어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여 행사를 소생시켰으며 1956년에 이르러 국가의 정식 법령으로 확정을 보았으며 올해는 제 회 어린이날입니다.

 학생 여러분은 장차 이 나라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모든 일을 짊어지고 나갈 새 주인들입니다. 지금 국가에서는 따뜻한 사랑과 깊은 이해 속에 여러분이 올바르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온갖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위하는 나라와 부모님의 마음을 이렇게 지극할수록 여러분의 책임과 사명도 그만큼 무겁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미 국민교육헌장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 국민들은 민족 중흥이라는 큰 사명을 띠고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갖은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보람찬 나라 일을 더욱 충실하고 눈부시게 이룩하자면 학생들은 지금부터의 생활을 알차게 해나가야 하겠습니다. 학생시절은 지극히 짤막하나마, 이때 튼튼하게 놓은 주춧돌을 일생을 튼튼하게 지탱하는 법입니다. 먼저 내 고장, 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겠으며, 민주주의를 받드는 마음도 어릴 때부터 뿌리를 내려야겠으며, 과학을 비롯한 모든 지식을 골고루 닦고, 예술을 즐기고, 체력을 튼튼히 하면서, 슬기에 찬 나날을 이어 가야 하겠습니다.

 학생 여러분, 지금 우리 나라는 세계 각국과 겨루어 가면서 경제적으로 풍부한 나라, 우렁차게 뻗어 가는 공업국가로 번창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성장하여 사회를 직접 이끌어 가는 훗날, 우리 나라는 온 누리에 즐거운 빛을 펼치는 힘찬 나라가 될 것입니다.


 

어버이 날


보건사회부에서 주관하여 조상과 어버이에 대한 은혜를 헤아리고 어른과 노인에 대한 존경과 보호에 관련된 각종 기념행사 1973년 3월 30일 대통령으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공포,시행하여 이 날을 정부주관 기념일로 정하였다.

 어버이 날의 유래

 유래 : 사순절의 최초로 날로부터 네 번째의 일요일에 어버이의 영혼에 감사를 바치기 위하여 교회를 찾는 영국,그리스의 풍습과 1910년경에 미국의 한 여성이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 꽃을 교인들에게 나누어 준 일에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1914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5월의 제2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한 것이 그 시초이다.

 외국에서는 5월의 두 번째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하여 어머니가 생존한 사람은 빨간 카네이션 꽃을, 어머니가 사망한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각종 집회를 열며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선물을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포함하고 조상과 모든 어른들을 위한 날로 포괄적인 규정을 한 점이 특색이며 원래의 어머니날을 74년부터 개칭한 것이다.

 명상의 시간 운영 자료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방송과 귀를 기울이고 율곡 선생님의 갸륵한 뜻을 알아봅시다.

 율곡의 어머니 사임당이 아파서 누워 계실 때 여섯 살짜리 어린 율곡은 이마를 땅에 대고 "어머니 병환을 빨리 낫게 해 주세요."하고 혼자 빌고 있더랍니다.

 훗날 효자인 율곡은 정치가로도 이름이 높았었지요. 우리는 율곡 선생님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우리 다 같이 마음속으로 "어머님 은혜"노래를 불러 봅시다.

 어린이 여러분!

 효도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행동이 진정한 효도가 아닐까요?

 언제나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예화 자료 1

 오늘은 5월 8일 어버이 날이예요. 오늘 아침도 여러분은 어머님께서 일찍 일어나셔서 지어 주신 아침밥을 먹고, 또 길을 가는데 조심해서 가라는 상냥하신 말씀을 듣고 나왔지요?

만일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서 어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참 쓸쓸해지고, 울고 싶어질 거예요.

 여러분! 단1초라도 공기를 못 마신다면 숨이 막힌다는 것을 다 알지요? 즉,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곧 생명이 끊어져요. 그러나 우리는 공기가 너무 흔하기 때문에 귀한 줄을 모르고 있단 말이예요. 마치 어버이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한없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그 지극하신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과 같지요.

 이와 같이 보통 때는 어버이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므로 어버이날을 정해서 그 크신 사랑을 생각하기로 한 것이예요.

 여러분! 어버이의 사랑은 정말 바다같이 넓고 태산같이 높아요. 우리를 돌보시기에 침식을 잊으시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예요. 자식이 위급할 때 어머니가 생명을 바쳐 그것을 구했다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어요.

 여러분! 이러한 어버이의 은혜에 어떻게 보답해야 되겠어요? 만일 오늘 어버이날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학교에 왔으면 집에 돌아가는 대로 '어버이 감사합니다.'하고 똑똑하게 인사해야 해요. 그리고 말로만 아니라 어버이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여러분이

작은 일을 해도 퍽 대견하게 여기시고 기쁘게 생각하세요. 오늘만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어버이의 노고를 덜어드리고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도록 힘써야 해요. 여러분! 오늘부터 그렇게 하도록 힘씁시다.

 예화 자료 2

 오늘은 5월 8일 어버이날입니다. 어버이날은 어머니날에서 발견하여 제정되었습니다. 어머니날의 기원은 1908년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마을에서 '안나 자이비스'라는 소녀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꽂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할 것이 기념이 되어 오던 중 미국 정부가 정식으로 매년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정한 것이 점차 세계적인 연례행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날이 되면 어머니의 거룩하신 은덕을 잊지 않기 위하여 어머니께 꽃과 선물을 드리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살아 계신 사람은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드리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8,15해방과 함께 헌법으로 여성의 정치적 자유가 이루어져서 이날을 기념해야한다는 주장이 생겨, 1956년 국회에서 어린이 주간과 관련해서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하고, 매년 연례행사를 계속했던 것인데, 1974년부터 명칭이 어버이날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아침도 여러분께서는 어머님께서 일찍 일어나시어 지어주신 아침밥을 먹고 또 "길가는데 조심해서 다녀오너라."라는 부모님의 걱정 어린 말씀을 듣고 나왔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침이나 학교에 다녀와서 어머니께서 보이지 않으면 참 쓸쓸해지고 울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늦도록 어머님께서 귀가하지 않으시면 마음이 허전하고 약간 두려움도 가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어머님께서 상냥한 옷차림으로 대해주시고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것을 먼저 잘 아시고 하여 주시기 때문에 늘 만족하겠지요? 그만큼 고마우신 분이 우리의 부모님이랍니다.

 우리들의 부모님께서는 추울세라 더울세라 병들세라 불편할세라 1초라도 공기를 마시지 못하면 숨이 막힌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고마운 공기가 너무 흔하기 때문에 그 고마움을 미쳐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어버이의 크신 사랑을 기르고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뜻깊은 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버이의 사랑이 정말 바다보다 깊고 태산보다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항상 우리를 보살펴 주시느라고 침식을 잊으시고 자식이 위급할 때 어버이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구하여 주었다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속담에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부모께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자식의 부모님에 대한 사랑은 만의 하나라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버이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드리려면 어버이들께서는 여러분이 작은 일을 하였어도 퍽 대견스럽게 여기시고 흐뭇해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조그만 일로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다면 날마다 한 두 가시씩 하여 드릴 수 있지 않습니까? 오늘부터 부모님의 노고를 덜어 드리는 여러분의 노력을 기대합니다.

 

식 목 일

애림(愛林) 사상을 고취하고 국토 미화와 산림녹화를 위하여 농림부에서 주관하여 범국민적으로 나무를 심는 날. 매년 4월 5일. 1970년 6월 15일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제정,공포하여 이 날을 공휴일로 정하였다. 식목일의 유래는 미국의 네브래스카주(州)에서 비롯되었다. 산림이 헐벗은 것을 본 개척민이 산림녹화운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매년 주민 전체가 하루를 식수를 위한 봉사일로 정한 것이 시초이다. 1872년 4월 10일 제1회 식목행사가 행하여지고, 그 후, 이 운동의 주창자인 J.S.모턴(나중에 주지사,농무장관이 됨)의 생일인 3월 22일을 아버데이(Arbor Day:나무의 날)라고 이름붙여 주(州)의 축제일로 정하였다. 이것이 전세계 각국에서 이를 본받게 된 것이다.

 나무 심는 시기

 이른 봄 얼었던 땅이 풀리는 대로 가급적 일찍 나무를 심는 것이 놓으며 늦어도 묘목의 눈이 트기전에 심어야 한다.

남부지방 : 3월 초순∼3월 하순

중부지방 : 3월 중순∼4월 초순

북부지방 : 3월 하순∼4월 중순

 명상의 시간 운영 자료

 어린이 여러분!

 명상의 시간입니다.

 옛날 말에 "나무 한 그루 없는 집에서 어찌 아들 딸을 기를 수 있으랴"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싱싱하게 자라나는 나무처럼 우리의 아들 딸도 무럭무럭 자라게 하고 싶은데서 나온 말인 것입니다. 또, 이처럼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자식을 낳고 기르는 일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말도 됩니다.

 퍽 오래전에 산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가 집안 일을 도왔습니다. 쇠죽도 쑤어야 하고 풀도 베어야 하고 집에서 기르는 토끼의 먹이도 줘야 했습니다. 게다가 부모님은 산에 가서 나무까지 베어 오라고 했습니다. 이 아이는 학교 선생님께서 배운대로 산의 나무를 꺾을 수가 없어 낙엽만을 조금 긁어왔습니다. 그 부모님은 아이가 놀기만 했다고 크게 꾸중을 하곤 했습니다. 아이는 며칠을 고민을 하다가 이런 내용을 일기장에 써 놓고 부모님을 원망하였습니다. '내가 산에 가서 나무를 꺾어오면 선생님의 말씀을 어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큰 해가 된다. 나는 죽어도 나무를 베어오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

 느끼는 점이 없으신지요?

 온 국민이 나무 한 그루씩을 심고 가꾸고 사랑하는 자세가 확립될 때 우리 나라는 푸른 금강산으로 변모할 것이며 산림자원도 풍부해지고 부강한 나라, 살기 좋은 복지국가가 될 것입니다.

 학교 안의 잔디, 꽃나무를 사랑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예화 자료 1( 거친 땅에 나무를 심어 덴마크를 일으킨 달가스)

 지금으로부터 약 90년전에 독일과 전쟁을 하여 진 덴마크는, 곡식이 가장 많이 나는 남쪽 지방의 땅을 고스란히 빼앗기고 말았다.

 워낙 작은 나라가 더 작아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사막과 버려둔 거친 땅뿐이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나지 않는 거친 땅에서 날마다 근심에 싸여 장차 살아갈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덴마크에 '에린꼬,미류스,달가스'라는 공병사관이 있었다. 달가스는 다리를 놓고 길을 내는 일을 할줄 알뿐 아니라, 또한 학자로서 흙의 성실과 나무와 풀에 대해서 연구가 깊었었다. 사람들은 너나 없이, "이미 우리 나라는 망한거나 다름없다. 어디고 외국으로 도망가야지, 이런 거친 땅만있는 나라에서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이렇게들 생각하였다.

 이 말을 들은 달가스는 "사실 우리는 좋은 땅을 다 빼앗겼소" 그러나, 우리가 이 거친 땅을 갈아서 더 좋은 밭을 만든다면, 잃어버린 땅보다도 더 넓은 땅을 찾게 될 게 아니겠소.

칼과 대포의 힘으로 잃은 것을 우리는 괭이와 낫의 힘으로 돌이킵시다그려." 이렇게 말하여 사람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돌멩이와 모래뿐인 거친 땅에 밭을 일구다니 어림없는 소리야."라고 웃어넘기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달가스는 이런 일에 조금도 굽히지 않고 거친 밭을 일구어 사람들이 잘 살 수 있게 하려고 결심하였다.

 덴마크의 기후는 밤과 낮의 기온이 몹시 오르내리어 여름철이라도 밤에는 서리가 내리는 데가 있었다. 또 바람이 세어 바닷가의 모래가 날려 아무리 밭을 일궈 놓아도 하룻밤새에 사막이 되어 버리고 만다. 게다가 비가 오면 곧 홍수가 났다. 이와같은 해를 막으려면 무엇보다도 나무를 심지 않으면 안된다.

 달가스는 거친 땅에 나무를 심을 연구를 시작하였다. 여러 가지로 애쓴 결과 덴마크 보다 훨씬 거친땅에서 자라기에 알맞은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실제로 심어보니까, 자라기는 잘 자라는데 이태 삼년 지나는 동안에 전부 말라 죽었다.

 달가스는 단념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높은 알프스산에서 나는 바람에 센 전나무를 노르웨이 전나무 사이에 심어 보았다.

 그랬더니 두 나무가 다 잘 자라기는 자라나 도무지 일정한 크기 이상 자라지는 않았다. 달가스에 게는 '후레데이크' 라는 아들이 있었다.

 '후레데리크'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도우려고 식물학을 공부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었다. 문득 크게 자란 전나무를 보았다. 이상히 여겨 자세히 살펴보니 사냥꾼이 지나 다니는 길이라 작은 전나무는 모조리 잘려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전나무가 얼마쯤 자란 뒤에는 속아 버려야 다른게 크게 자란다는 것을 알고, 전부 속아 버렸다. 그랬더니, 몇해 안가서 숲이 우거졌다. 이리하여 보리, 사탕무, 채소 따위가 잘 자라서 전쟁하기 전보다 풍성한 나라가 된 것이다.

 예화 자료 2

 우리 나라는 총 임야면적이 총면적의 7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활주변에서 나무의 쓰임이 많은데도 우리의 국토에서 생산된 목재가 절대량이 부족하여 많은 외화를 소비하고 있으나, 식목일을 맞아 다시 한번 반성을 해 보아야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의 통치로부터 해방되면서 헐벗은 우리 강토에 나무를 심어야 하겠다는 절실한 요망이 있어 열심히 나무심기를 해왔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금강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상태입니다. 금수강산이 되자면 강에는 언제나 맑은 물이 흘러야 하고 산에는 푸른 나무가 가득차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산에 나무가 없다면 금수강산을 이룰 수 없는 것은 물론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많습니다. 장마가지면 곧 사태가 나며 산의 흙과 모래가 흘러내려 강물을 메워버리므로 강은 강이로되 푸른 물이 마른 강으로 될 것입니다. 또한 가뭄때는 농사에 쓸 물은 물론 식수도 구하기 힘들어 생명에까지 위협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마다 식목일을 맞이하여 한 그루의 나무라도 잘 심고, 그 뒤에는 정성껏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나무를 심는 것만으로 일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많이 심어도 잘 가꾸지 않고 마구 베어내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한 그루의 나무라도 심고 정성껏 가꾸어 줌으로써, 삼천리 강산이 더욱 좋은 환경으로 바뀌어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여야 하겠습니다.

 예화 자료 3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우리 민족이 일본의 통치로부터 해방되면서 헐벗은 우리 강토에 나무를 심어야 하겠다는 절실한 요망이 국민들의 의사로 집약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때 농림부가 주관하여 관계 문헌을 통하여 적당한 날을 찾던 중 당나라의 세력을 완전히 물리치고 통일을 완성한 날이 양력으로 4월 5일이며 또한 상종(조선왕조 9대) 이 춘경을 하신 날도 4월 5일이었으므로 민족사적 의의와 농경사적 의의를 고려하여 이 날을 식목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맹자님의 어머니께서는 그 아드님을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맹자님이 그 환경에 따라 좋지않은 버릇을 배워 익히는 모습을 보시고, 교육상 나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학생들도 물론 환경에 따라 품성에 좋은 변화를 가져오거나 또는 좋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한 나라의 국민성도 그 나라의 환경에 영향되는 바 클 것이고, 그것은 몇 천년은 흘러 내려오는 가운데 민족성을 이루는데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말하지만, 우리 국토가 명실공히 금수강산이 되지만, 강에는 언제나 푸른 물이 흘러야 되고 산에는 푸른 나무가 가득차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항상 강물이 푸르게 흐르게 하자면 반드시 산에 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어야 하고, 만일 산에 나무가 없으면 장마 때에 곧 사태가 나며, 산의 흙과 모래가 흘러내려 강물을 메워 버리므로, 강은 강이로되 푸른 물이 마른강으로 됩니다. 따라서 강에 물이 없으니 농사에 쓸 물은 물론 식수도 구하기 힘들어 크나큰 소란을 일으키고 말 것입니다.

 특히 옛부터 치산치수는 정치의 근본요제라 하였으며 치수의 근본이 바로 치산에 달려 있으며 따라서 국가와 민족의 번영이 산림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역사가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나무의 용도가 다양하고 그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우리의 현실은 원목이 절대 부족한 현실임을 생각해 볼 때 또 하나의 식목일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해방 후 우리는 식목일행사를 통하여 수없이 많은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심은 나무에 비하여 살아 남아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나무는 아주 적은 수라고 합니다. 이런 결과는 나무를 심고 가꾸려는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숲을 내것, 내 몸같이 아끼고 사랑할 때에 비로소 우리 강산은 온통 푸르름을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 마음, 한뜻으로 한 그루의 나무라도 정성껏 심고 가꾸어 금수강산을 이룩할 때 산림자원도 풍부해지고, 부강한 나라, 살기 좋은 복지국가가 될 것입니다.

 

  과학의 날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높이고, 모든 국민생활의 과학화를 촉진하기 위하여 제정한 날. 4월 21일. 196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가 세워진 날을 기념하여 68년 ‘과학의 날’로 정하였고, 73년 3월 30일 제정,공포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확정되었다. 과학기술 진흥에 힘쓴 유공자들을 표창,수상하고 ‘과학의 날’을 전후하여 ‘과학주간’을 정하여 여러 가지 행사를 가진다.

나라에서는 국민들에게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하고 과학 발전과 과학적인 생활태도를 형성시키기 위하여 설정한 기념일 이다.

 과학의 날로 제정된 1967년과 1968년 두 해에 걸쳐 국내외 저명한 과학 기술자 400여명을 동원하여 외국의 발전 추세와 우리 나라의 사회 경제적인 전망 위에 1980년까지 과학 기술이 지향할 방향과 개발 전략을 설정과학 장기 종합 계획을 수립하여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의 과학 기술 수준까지 도달하는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과학기술처의 발족, 한국과학기술 연구소(KIST), 한국기술정보센터(KORSTIC), 한국과학원(KASS)을 비롯한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등 수많은 기관이 과학기술처의 업무를 분담 보조하는 등 과학의 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가 마련되었다.

 명상의 시간 운영 자료

 어린이 여러분!

 명상의 시간입니다.

 오늘은 제 회 "과학의 날"입니다.

 우리가 해마다 이 날을 특히 기념하는 것은 온 국민이 과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과학하는 자세와 의욕을 새롭게 하여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범국민적인 노력을 다짐하자는데 그 참뜻이 있는 것입니다.

 과학적 기술은 한 마디로 국민발전의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가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자본이나 자원등 여러 가지 요건을 갖추고 있어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과학기술인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나라의 과학기술은 선진국에 비하여 뒤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찍부터 과학기술에 있어 남보다 뛰어난 자질과 역량을 과시한 우수한 민족입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든 것도 우리 민족이며 남이 못하는 청자기를 만든 것도 우리 민족이었습니다.

 또한 오늘날 해외 여러 나라에서 여러 가지 눈부신 연구 업적을 쌓고 이름을 떨치는 우수한 우리과학자의 활동이나 세계 기능 올림픽 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우리 기능인들의 활약은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 국민의 재능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바탕 위에서 과학의 힘을 기르고 우리가 할 일은 작은 것도 잘 관찰하는 그런 힘을 길러야겠습니다.

 예화 자료 1

 오늘은 번째 맞는 과학의 날입니다.

 우리가 해마다 이날을 과학의 날로 정하고 기념하는 것은 그만큼 과학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세계는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선진국이 될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하면 항상 업신여김을 당하는 약소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경제 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룩하는데는 여러 가지 요건이 갖춰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과학은 제일 중요하며 그의 예는 지구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원과 자본이 넉넉하더라도 이것을 잘 움직일 과학기술이 부족할 때 아무리 선진국이 되려고 안간힘을 다해도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일찍이 과학기술에 있어 남조다 뛰어난 자질과 역량을 과시한 민족입니다.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선 금속활자의 발명, 조선시대의 천문대와 측우기, 지금도 그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는 청자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기능올림픽 대회에서 몇해를 거듭해 우승을 차지하는 기능인의 활약과 중동, 아프리카, 유럽 등지에서 눈부신 활약으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건설업체, 해외 여러 나라에서 눈부신 연구 업적을 쌓고 이름을 떨치는 우수한 우리 과학자들의 활동 등은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 국민의 재능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학한국, 선진한국이 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부터 과학적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생활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이 과학적으로 생활할 때 조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자료 2


 4월은 과학의 달입니다.

 한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은 그 나라의 국력을 재는 척도가 되고 있으며 과학기술 개발은 한 나라의 생활과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처럼 국토가 좁고 부존자원이 없으며 인구가 조밀한 나라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과학을 진흥시키고 기술을 개발하려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1967년 4월 21일 정부는 국민이 과학에 관심을 가져 과학 발전과 과학적인 생활태도를 갖게 하기 위하여 이 날을 과학의 날로 정하고 과학기술처에서는 70년대는 과학기술 현대화의 태동기였고, 81년도는 제5공화국이 출범한 해로써 과학기술개발 5개년 계획의 수립을 통하여 과학기술 진흥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였고 82년은 5차 5개년 계획의 3년째 접어드는 이 시점에서 83년은 과학기술 발전을 가속화시키는 해였다면 84년은 정상고도를 오르고 본 궤도에 이행할 단계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학생들은 기초 과학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학생들의 장래, 희망에 관계없이 성실하게 과학적인 사고 방식과 합리적인 생활방법, 논리적인 생활의식을 모두가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과학교육을 통하여 학교와 가정에서나 객관적인 판단능력,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방식에 관한 바탕을 함양하는데 힘써야 될 것입니다.

 이런 때에 과학의 달을 맞아 학교에서 몇가지 행사를 하는 데 여러분은 더욱 참여의식을 갖고 참가하기를 바랍니다.

 예화 자료 3 (글짓기:수중도시)


나는 어느 날 큰 잠수함을 타고 내가 꿈에도 그리던 수중도시로 갔습니다.

큰 아파트가 줄줄이 놓여 있고 어린이를 위한 공원 외에도 놀이터와 여러 공공시설물이 있었습니다. 큰 연구소가 있어서 그 곳에 들어가보니 번쩍번쩍 빛나는 컴퓨터가 양쪽으로 쭉 놓여있고 고깃떼가 박사들 위를 지나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머 물도 없는데 어떻게 움직이지" 궁금해서 어떤 작은 문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얘, 문어야, 저 고기들은 물도 없는데 어쩌면 저렇게 잘 다니니?"하고 묻자. "으응. 저 물고기들은 모두 로봇 물고기라서 진짜 고기와 친해져 그들의 불편한 점을 듣고 우리에게 말해주는 거란다."라고 문어의 말을 듣고, "아! 역시 말로만 듣던 과학시대로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후 문어는 여러곳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물 속에서도 이사하게 숨도 차지 않고 걸음도 땅 위에서와 똑같이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식품점도 굉장히 크고 해물 등 각종 산호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이 곳 바다에는 땅위 자원의 몇 배 이상으로 굉장히 많아서 한번 개척하면 자원을 무한정 구할 수 있단다." 문어의 설명을 들어가면서 나는 아주 크고 큰 유리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얘, 이 유리는 뭐니?"

 "응. 이것은 유리가 아니라 텔레비전이야."

 "뭐? 이것이 텔레비전이라구?"

 "응. 이런 텔레비전은 이곳 수중도시에 얼마든지 있단다."

 이런 말을 한 문어는 그 옆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그러자 텔레비전에서 수중도시의 모습이 환하게 비쳤습니다. 조금전에 가본 큰 연구실의 모습도, 또 놀이터도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내가 보지 못한 용궁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문어야, 나 저 용구에 가 보고 싶어."

 내 말을 듣고 있던 문어는 나를 이끌고 어디론가 갔습니다. 한참 가다 보니 내 앞에는 큰 용궁, 아주 멋있고 웅장한 용궁이 있었습니다.

 "이 용궁에는 우리들의 꿈속 나라처럼 인어와 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단다. 과학이 발달했어도 자연을 더럽히고 싶은 생각이 없던 사람들은 이런 상상의 나라도 만들었단다."

문어의 말을 듣고 있던 나도 왠지 모르게 황홀했습니다. 순찰하던 큰 잠수함과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수중의 도시를 보니 과학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푸른 이끼가 있는 동산과 높이선 빌딩들, 수중 도시의 구조는 매우 잘되어 있었고 2000년대의 과학발전의 미래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내가 타고 온 잠수함으로 돌아와 집으로 향했습니다. 가면서 1985년도에 열렸던 일본의 쭈꾸바 세계 과학 박람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노란 머리, 갈색 머리, 검정 머리의 사람들이 왁자지껄 거리된 박람회! 나는 과학의 힘은 무한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몰랐던 자연의 법칙을 알아냄으로써 식량자원을 증진시키고 인간의 모든 불치의 병을 낫게 하고 모든 자연의 힘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닥쳐오는 과학의 시대에 살기 위해서는 나는 오늘도 양파의 세포를 관찰하고 '왜?"라는 글자를 가슴깊이 새깁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를 그리며 나는 한시도 태만해서는 안되겠다고 몇번이고 다짐합니다.

 과학의 힘은 위대하나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은 우리 인간의 노력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화 자료 4 (과학독후감:'퀴리 부인을 읽고)


 나는 이 책을 읽고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꼭 내 마음을 바꾸어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왜 진작 이 책을 읽지 못했나 하고 후회도 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러번 감탄을 하였다. 자기의 조국 폴란드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너무나 훌륭했다. 러시아의 통치를 받으면서도 폴란드를 사랑하고 폴란드의 공부를 숨어서 하는 마음은 자기 조국을 아끼는 마음과도 같았다.

 그리고, 노벨상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을 타다니.........

 여자로서는 정말 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 상을 타기 위해서 많은 고통이 따랐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참는 마음은 남자인 나로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언제나 퀴리부인처럼 꿋꿋하게 살아야겠다.

 그리고 퀴리부인은 소르본 대학의 교수가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몸이 허약하여 자리에 눕자 브로오냐 언니가 많은 도움을 주어 다시 원기를 되찾았다. 나는 브로오냐 언니께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렸다.

 퀴리부인은 라듐을 발견하여 큰돈을 벌었으나 라듐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고 인류공동의 것으로 만든 퀴리부인은 과학의 뜻을 올바로 알고 실천한 위대한 학자라고 생각된다. 퀴리부인처럼 모든 사람들이 처음부터 잘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끊임없이 노력과 고생을 해서 나중에는 성공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깨닫고 어떠한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그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굳은 마음으로 나의 길을 가는데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 후에 폴란드는 광복이 되었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그때의 폴란드 국민들은 기쁨으로 가득찼을 것이다.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에 귀화한 퀴리부인의 위대한 정신은 나의 머리속에 영원히 남아있다.


스승의 날


 스승의 은덕에 감사하고 존경하며 추모하는 뜻으로 제정한 날. 5월 15일. 전국 청소년 적십자단원은 1963년 10월 서울과, 64년 4월 전주에서 각도 대표가 모여 회의를 열고, 불우한 퇴직교사 또는 질병에 걸린 교사를 위로하기 위하여 매년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였다. 이 날은 스승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을 널리 선양하기 위하여 음악회·체육회 등을 개최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스승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경건한 뜻을 표하며, 불우한 퇴직 은사나 와병중인 교사를 방문하여 위문품을 전달하고 위로하기도 한다.

 명상의 시간 운영 자료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조용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스승의 은혜를 기리며 다시 교육을 생각해 봅시다. 교육은 인간에게만 있는 활동으로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가르치는 개인활동이나 사회활동에 있어 행복하고 가치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그 인격을 기르는 작용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교육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사회에서 존경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해방후 혼란한 6.15남침의 피해를 딛고 1960년 후반부터 눈부신 경제발전과 나라의 힘이 커진 것은 많은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시킨 교육의 힘이었습니다.

 인구는 많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 나라는 더욱더 교육의 힘이 막중한 것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나라의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영웅들과 혼란한 시대를 이끌어 간 성현들은 모두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과 은혜로 이룩된 것입니다.

 참으로 스승은 제2의 부모이며 인류의 등불입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진다."는 구절을 가슴에 깊이 새겨 평소에 우리들의 할 일을 부지런히 다하는 것이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마음의 선물일 것입니다.

 예화 자료 1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스승의 날은 학생들이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는 날입니다. 어버이날의 성격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옛부터 스승의 은혜는 부모의 은혜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제자가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은 도리상 당연하겠으나 그것은 교육의 효과를 올리기 위하여도 꼭 필요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교육은 사제간의 인격적 접촉에서 이루어지는 까닭에, 제자가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인격을 존중할 때 크게 감화를 받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인간에게만 있는 활동으로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형성시켜 개인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있어 행복하고 가치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그 인격을 기르는 작용입니다.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닠, 1호 인공위성을 처음 발사하였을 때 미국은 그 반성의 초점을 교육에 두었습니다. 현대는 교육 경쟁시대 또 교육 전쟁시대로 각국은 교육의 중요성과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리하여, 교육을 국가의 백년대계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한나라의 청소년을 어떻게 교육하느냐는 중요한 분야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국가발전에 막중한 교육을 담당한 사람은

바로 선생님인 것입니다. 즉, 선생님은 교육기능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이며 인간형성자로 작용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1945년 해방후 6·25남침의 피해를 딛고 1960년대 후반부터 눈부신 경제발전과 국력신장은 실로 많은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시킨 교육의 힘이였음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구는 많고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 나라는 인력자원의 개발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최후의 방법임을 깊이 인식할 때 우리 나라의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막중합니다.

 학생 여러분!

 국난을 이겨낸 영웅들과 혼란한 시대를 이끌어간 성현들은 모두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과 은혜로 이룩된 것입니다. 참으로 스승은 제2의 부모님이며 인류의 등불입니다.

오늘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건전한 심신의 육성과 도덕적 인격을 도야'하고 '세계로 진출하는 굳센 진취성을 배양'하며 '미래에 적용할 과학적 지식과 고도의 기술연마' 및 '투철한 애국심과 민족공동체 의식을 고양'하여 국가와 민족에 보답하는 것이 바로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임을 깊이 명심해야겠습니다.


환경의 날

매년 6월 5일이 되면 지구 공동체는 [세계 환경의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함께 모입니다. [세계 환경의 날] 기념행사의 기본정신은 모든 개개인이 깨끗한 대기, 맑은 물 그리고 생물다양성의 편익을 향유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과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미지의 잠재적 능력을 발휘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며 또 책임이어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는 환경 보호를 위하여 이루어진 업적을 평가하면서, 보다 큰 도전에 응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환경보전을 위하여 특별한 역할을 한 보통 사람들의 용기 있는 행 동과 결단력을 인정해야 합니다. 산림 황폐화에서 오염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환경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개개인이 환경을 옹호하고 그 증진을 위해 행동할 때마다 희망의 잔물결이 일어날 것입니다. 모든 개개인의 성취는, 개별적으로 평가될 때도 의미가 있지만 지구 공동체가 함께 행동할 때 매우 거대한 것이 됩니다 [Habitat Ⅱ회의(인간정주회의Ⅱ)]가 개최되는 금년에 [세계 환경의 날] 주제로 "우리의 지구, 우리의 안식처, 우리의 집" 이 선정된 것은 적절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싶어하며 그것은 깨끗하고, 존엄하며, 안전한 집을 소유하여 거기서 살며 가족을 부양하는 그런 삶을 뜻합니다. 그러나 삶의 질은 도시의 폭발적이고 지속적인 팽창에 의해서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도시들은 취약한 생태계속으로 팽창하고 있습니다. 지금 50만명이상의 인구를 가진 도시의 약 40%가 연안에 위치하고 있읍니다. 대기오염은 이미 많은 대도시에서 건강기준을 초과하고 있읍니다. 특히 오염된 물의 공급은 공중보건에 위협이 되고 있으며, 불유쾌한 폐기물 또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가지 명백한 사실은 도시의 운명이 점차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지구의 운명도 결정한다는 것입이다. 인류역사를 통하여 그랬듯이 도시가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려면, 앞으로의 개발은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도시환경을 개선한다는 우선적 과제 저편에는 지방 정부를 강화하고, 빈곤을 경감하며 지역사회를 지원하는 새로운 접근방법을 실천해야 하며, 보다 환경친화적인 도시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세계환경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환경보전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지구환경시민]으로서의 메시지를 전파하는데 우리 자신을 바칩시다. 그 [지구환경시민]은 모든 세계시민들의 기회임과 동시에 책임으로서 자신들의 주위를 보살피고 이 세상을 보다 나은 장소로 만드는 책임인 것입니다.

 환경 문제

오늘날 인류가 새로운 문제로서 당면하고 있는 환경문제는 문제 자체가 시간적,공간적 차원에서 변하는 동적 과정에 있는 것이므로 절대적이고 모범적이며 결정적이라고 할 만한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 이러한 환경에 대한 정책은 복잡한 문제의 복합이라는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파악하여야 할 문제인데 이를 몇 가지 부분적인 시스템으로 나누어 유형별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여기서 정책을 수립함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물리,화학,법률,행정 등 학제적 접근이 요청되는데, 부분적인 시스템에서 인구문제,자원문제는 환경오염문제에 밀접한 관련변수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관변수에서 적정성의 총화가 문제복합체로서의 환경문제 해결에 대한 대안이 된다. 이러한 뜻에서 1972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국제연합인간환경회의’가 채택한 ‘UN 인간환경선언’이 도시,인구 등 인간거주의 문제, 천연자원의 합리적 관리, 환경오염, 개발과 환경 등의 문제를 채택한 것은 국제연합이 인권을 선언한 이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은 이러한 인류의 선언 앞에서 공동의 의무부담으로 환경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종래의 각국 환경정책은 공중위생,경제정책,관광사업,국가안보 또는 국가유산으로서의 문화재의 보존 등, 하나의 국가를 단위로 하는 것만을 고려하여 수립되었다. 그러나 미국,소련이 지구 밖으로 우주선을 떠올림으로써 이 지구의 표면이 하나의 생명유지계라는 인식과 아울러 생물권의 일체성과 취약성을 깨닫게 하는 시점을 인류에게 안겨 주었다. 이 지구상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어떠한 대립상태에 있건, 인간생존의 환경이라는 점에서 보는 한, 지구는 이미 하나의 지구촌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늘의 환경정책은 한 나라 국민의 안녕을 위하는 것 이상으로 그 나라가 인류적인 부담에서 어떻게 공헌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국가위신의 척도가 되고 있다. 전세계의 모든 국가는 지금 환경문제처리를 위한 입법과 행정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는 환경권이 존재한다는 사상이 세계에 퍼지고 있으며, 또 이것이 제도화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국가경제정책의 수립에 있어서도 과거와 같은 개발목표의 추구만이 아닌, 경제학과 생태학의 조화를 전제로 하는 목표가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또 환경정책의 수립에는 널리 비정치단체의 의견이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

 수질오염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주방

기름기 묻은 그릇은 휴지로 닦아낸 후 물로 세척합니다. 주방 오물 분쇄기를 사용하지 맙시다. 이것을 쓰면 물이 크게 오염 됩니다. 쓰다 남은 식용유는 신문지에 적셔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하며 설거지할 때 수도꼭지를 틀어 놓지 않도록 합시다.

화장실

가정용수의 1/3이 수세식 화장실에 이용되고 있는데 각 가정에서 1.5리터 용 프라스틱 음료수 병 1개에 물을 채워 변기 물탱크에 넣어 두면 1년에 약 4,500만 톤의 물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수도꼭지 누수

수도꼭지에서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20분안에 한병정도를 채운다면 1년에 6,000L의 물을 낭비하게 됩니다. 수돗물 소리가 나면 확인한 후 꼭 잠그는 습관을 갖는다. 주방, 화장실, 세면대등 어디서든지 언제나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나면 확인하고 잠근다.

수도꼭지

수돗물을 틀어놓고 자리를 비우지 말고 양치질을 할때에는 물 한컵만 사용하고 세면시에는 세면대에 물을 70%정도만 받아 사용합니다. 양치질할 때에는 반드시 컵에 물을 받아서 사용합시다. 물 3컵 정도면 충분하나 3분간 수도를 열어놓고 하면 18L의 물이 낭비됩니다.

접시세척기

접시세척기는 사용년수에 따라 다르지만 저녁식사 후 12분동안 세척하기 위해서는 20 - 40리터의 물이 소요됩니다. 따라서 접시세척기를 사용할 때에는 접시를 최대한 채워서 세척하도록 합니다.

조리대

수돗물을 틀어놓고 자리를 비우지 말고, 채소나 더러운 식기를 씻을 때에는 물을 그릇에 따로 받아 사용하면 수도꼭지를 계속 틀어놓고 계속 사용할 때보다 10배 정도 절약됩니다.

샤워와 목욕

목욕보다 샤워를 하며 샤워는 목욕물보다 1/3 정도밖에 사용되지 않고 에너지도 절약됩니다. 샴프와 린스는 적게 사용합니다. 샴프나 린스를 많이 쓰면 헹구는데에도 많은 물이 낭비되고, 잘 분해되지 않아 물을 오염시킵니다.

주전자

물소비 및 에너지절약을 위해 주전자에 가능한한 많은 물을 채우고 끓입니다.

세탁기

세탁기를 한번 사용하는데 95리터 이상의 물이 소비됩니다. 세탁기 사용시에는 세탁물은 최대한으로 모아서 함께 세탁하도록 하고 세제는 가급적 천연 세제를 사용하도록하며 그 양을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가정용 호스

호스를 사용할 때는 1분에 한양동이에 해당하는 물이 소비되기 때문에 자리를 꼭 지켜야 합니다. 만약 호스 끝에 제동 노즐을 부착하면 물을 절약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며, 또한 자동차의 비눗물 세차시 호수를 사용하는 것보다 살수기를 사용하는 것이 물이 절약됩니다.

정원

정원용수용 큰물통을 준비하여 빗물을 받아 사용합니다. 그리고 목욕한 물을 버리지 말고 정원이나 화분용으로 다시 씁시다.

세차

세차할 때는 호스를 사용하지 않고 양동이를 사용합니다.(양동이 사용시 50리터 정도면 충분하나 호스를 사용하면 140리터 이상이 소요되어 90리터 정도가 낭비됩니다.)


 현 충 일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정한 기념일. 6월 6일. 대통령 이하 정부요인들, 그리고 국민들도 국군묘지를 참배하고, 이날 오전 10시에는 전국민이 사이렌 소리와 함께 1분간 묵념을 올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1970년 6월 15일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공포하여 공휴일로 정하였다.

 명상의 시간 운영 자료

 조용히 눈을 감고 방송에 귀를 기울이세요. 오늘은 현충일에 대해 생각해 보겠어요. 6월 6일 현충일은 나라를 지키다가 돌아가신 많은 애국 지사 여러분들의 영혼을 기리고 명복을 비는 날입니다.

 여러분!

 총알과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싸움터에서 오직 우리 대한 민국을 적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신 국군장병 아저씨들이 없었던들 우리는 지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지금도 북한 공산군들에게 괴로움을 당하며 마음대로 먹지도 입지도 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북한 공산당은 우리의 조국, 자유 대한을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국군 아저씨들의 희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생각하면 숭고한 그 희생 정신에 스르르 고개가 숙여질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나라를 지키려다 돌아가신 국군 아저씨들께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그리고 그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화 자료 1

 오늘은 호국 선열의 숭고한 정신과 교훈을 이어받아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결의와 각오를 다지면서 조기를 달고 조용히 보내며 노래와 춤을 삼가하고 호국 영령들의 넋을 위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조국을 지켜온 거룩한 우리의 조상들이 있기에 이렇게 떳떳한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가신 임들의 충성과 헌신은 온겨레의 마음속에 등대가 되어 어둡고 슬픈 우리에게 희망과 자신을 갖게 하여 세계로 뻗는 조국으로 성장시킨 것입니다.

 현충일을 맞아 우리 어린이들은 고도의 과학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국가를 위해,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민족 공동체 의식을 길러 온 국민 모두가 민주, 정의,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길이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고귀한 희생에 보답하기 위하여 유가족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보내며, 국토 통일의 숙원을 하루 속히 이루도록 스스로 국민의 힘을 길러 우리 나라사랑의 용기와 각오를 새로이 가져야 하겠습니다.

 

 현 충 일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정한 기념일. 6월 6일. 대통령 이하 정부요인들, 그리고 국민들도 국군묘지를 참배하고, 이날 오전 10시에는 전국민이 사이렌 소리와 함께 1분간 묵념을 올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1970년 6월 15일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공포하여 공휴일로 정하였다.

 명상의 시간 운영 자료

 조용히 눈을 감고 방송에 귀를 기울이세요. 오늘은 현충일에 대해 생각해 보겠어요. 6월 6일 현충일은 나라를 지키다가 돌아가신 많은 애국 지사 여러분들의 영혼을 기리고 명복을 비는 날입니다.

 여러분!

 총알과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싸움터에서 오직 우리 대한 민국을 적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신 국군장병 아저씨들이 없었던들 우리는 지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지금도 북한 공산군들에게 괴로움을 당하며 마음대로 먹지도 입지도 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북한 공산당은 우리의 조국, 자유 대한을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국군 아저씨들의 희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생각하면 숭고한 그 희생 정신에 스르르 고개가 숙여질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나라를 지키려다 돌아가신 국군 아저씨들께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그리고 그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화 자료 1

 오늘은 호국 선열의 숭고한 정신과 교훈을 이어받아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결의와 각오를 다지면서 조기를 달고 조용히 보내며 노래와 춤을 삼가하고 호국 영령들의 넋을 위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조국을 지켜온 거룩한 우리의 조상들이 있기에 이렇게 떳떳한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가신 임들의 충성과 헌신은 온겨레의 마음속에 등대가 되어 어둡고 슬픈 우리에게 희망과 자신을 갖게 하여 세계로 뻗는 조국으로 성장시킨 것입니다.

 현충일을 맞아 우리 어린이들은 고도의 과학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국가를 위해,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민족 공동체 의식을 길러 온 국민 모두가 민주, 정의,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길이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고귀한 희생에 보답하기 위하여 유가족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보내며, 국토 통일의 숙원을 하루 속히 이루도록 스스로 국민의 힘을 길러 우리 나라사랑의 용기와 각오를 새로이 가져야 하겠습니다.

국군의 날


 10월 1일은 국군의 날이다. 이 날을 국군의 날로 정한 까닭은 6·25당시 수도 서울을 수복(1950. 9. 28)한 국군이 같은 해 10월 1일을 기해서 38선을 돌파, 북진을 개시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인데 1956년 9월 21일 대통령령 1173호로서 제정되었다. 1976년부터는 국군의 날을 공휴일로 제정 각종 행사를 벌이며 이 날을 경축하고 있다. 우리 나라 국군이 발달해 온 발자취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946년 1월 15일 : 청년의 열성으로 '국방 경비대' 3개 대대 창설

1948년 9월 1일 : 국방 경비대가 '육군'으로 발족

1948년 9월 5일 : 부산의 '해안 경비대'가 해군으로 발족

1949년 10월 1일 : 육군 항공대에서 공군으로 독립

1950년 6월 25일 : 북괴 공산당의 남침으로 6·25사변 발발

1953년 7월 27일 : 휴전 협정으로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뀜

1956년 9월 21일 :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제정

1976년부터는 국군의 날을 공휴일로 제정



현재 우리 나라는 일선을 지키는 60만 국군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자주 국방의 기치 아래 굳게 단결하여 있고 더구나 향토 예비군과 민방위대 창설은 후방의 안전은 물론 국민 정신의 총화에 큰 도움이 되어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방위력을 갖게 되었다.

 예화 자료 1

 10월 1일은 「국군의 날」입니다. 매년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해서 우리가 이 날의 의의를 되새기고 국군의 창설과 발전을 경축하는 것은 국군이야말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민의 군대」이며 현실적으로는 북한의 재침야욕을 제압하고 분쇄하는 국방력으로서 제일선에 나서는 반공의 선봉장이기 때문입니다. 국군을 일컬어 「국민의 군대」라고 하거나 「반공의 선봉장」이라고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시하다시피 이 지구상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군대조직이 있습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 개척이나 타민족의 지배를 위해서 존재하던 침략군대가 있는가 하면, 지금의 공산주의 군대와 같이 이른바 공산혁명을 위해서 사상과 이념의 전파를 목적으로 하고 무력침략까지 마다하지 않는 군대도 있습니다. 독재자나 특정계급(당)의 이익 확보를 위해서 존재하는 북괴군에 비해서 우리의 국군은 전체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며 그 조직과 구성 그리고 운영도 전체국민의 의사에 합치됨으로써 존재하는 것입니다.

 국군을 일컬어 「국민의 군대」라고 부르는 것은 국군의 전부가 의무종군을 하며 이들 모두가 국민의 자제로 이루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국군은 바로 우리 자신이며 우리의 이익과 의사를 대변하는 군사적 집합체입니다. 「국군의 날」이 되면 우리는 「국민의 군대」가 보여주는 당당한 위용과 막강한 전투력에 대해서 깊은 신뢰와 성원을 보내게 됩니다.

 국군이라 해서 오늘과 같은 위풍당당한 자부와 건실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국군의 역사와 전통 속에는 정부수립 이전(1948년)의 국방경비대로 출발하여, 어려운 시기도 있었으며 정부수립과 함께, 대한 민국의 법에 따라 정무의 군대조직이 이루어졌다 해도 필요한 무기와 병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뜻대로 안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초창기의 국군이 겪어야 했던 가장 큰 시련과 고난은 「6·25」라는 전대미문의 동족 상잔이었습니다. 북괴의 불법적이며 민족 배반적인 남침에 의해서 빚어진 3년간의 동족 전쟁 중에는 우리 국군은 보잘 것 없는 장비와 변변히 훈련도 못한 채 국가와 민족앞에 닥친 위험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6·26」당시 우리 국군이 이와 같은 험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투철한 국가의식과 민족의식으로 싸움에 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0월 1일이 「국군의 날」로 지정된 것도 6.25 당시 수도 서울을 수복(1950년 9월 28일)한 국군이 같은 해 10월 1일을 기해서 38선을 돌파, 북진을 개시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국군은 이제 세계의 다른 어떤 군대와 견주어 보아도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군대로 성장해 있을뿐더러 그 동안 쌓아 온 빛나는 전통과 전투적으로 외국(베트남)의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는 일에도 지원을 할 수 있는 힘을 비축하고 있습니다. 국군의 발전을 더 한층 고무하는 것은 자주국방을 달성하려는 범국민적 단합과 결의이며 북한의 도발에는 군과 민을 망라하는 총력전으로 대처한다는 우리들의 정신입니다.

 「국군의 날」은 국군과 국민이 보여주는 긴밀한 연대의식, 통일을 위해서 우리의 국방력이 얼마나 중차대하고 요긴한 것인가를 가슴깊이 되새겨 보는 날입니다.

 한글날

10월 9일은 조선시대 제4대 임금이신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제정하시어 1446년 세상에 반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1926년 훈민정음 반포 8주갑(480년)을 맞이하여 세종실록 28년 9월조를 따라 음력 9월 말일을 '가갸날'로 정해서 기념식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하여 1927년에는 음력으로 환산하여 10월 29일로 하다가 2년 후 다시 환산에 의문이 있어 10월 28일로 재환산하였는데 또 다시 1940년 경북 의성의 모 고가에서 훈민정음 반포 원본의 발견으로 10월 9일로 확정하였다. 그러나, 이어 조선어학회 사건과 한글 탄압 정책으로 중단되었다가 1945년 해방과 함께 '한글날'로 부활되고 이 날을 기념하여 세종대왕의 높은 정신과 뛰어난 슬기를 기리게 되었으며 한글 창제에 함께 임했던 집현전 학자들의 공을 찬양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되새겨 보는 날로서 공휴일로 정해져 있다.

 명상의 시간 운영 자료

 여러분!

 명상의 시간입니다.

 오늘은 우리 글을 사랑하고 가꾸자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한글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과학적이고 훌륭한 글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얘기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한글은 1443년 제정되었고 1446년 그 제정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때, 세종대왕은 "말은 우리말이 분명히 있으나 글이 어찌 우리 글과 말이라고 자랑할 수 있겠는가? 더욱 이 나라마다 그들의 말과 글이 따로 있는 것은 그 나라의 자랑일 뿐만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글을 가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냐? 배우기 쉽고 쓰기 편리하고 어떤 소리든지 자유롭게 나타낼 수 있으니 이 더욱 좋으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훌륭하신 세종대왕의 뜻을 잘 받들어 우리 글을 잘 가꾸어야겠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우리의 글을 두고 외국 것이라면 더 높게 보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도 광고나 물건에 서양이름을 붙이고 외국말을 써야만 똑똑한 사람인 것처럼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세종대왕께서 물려주신 훌륭한 한글을 잘 가꾸고 보존하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부시간에 열심히 공부지 않아서 받침이 틀리는 학생은 없나요? 편지 한 통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없나요? 고운말을 쓰지 않고 상스런 말을 쓰는 학생은 없나요? 책을 많이 읽고 익히는 것도 우리 글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 글을 사랑하고 가꾸어 갑시다.

 예화 자료 1

 10월 9일은 반포 552(98년 현재)주년 기념일입니다. 세계 어떤 민족도 제 나라 글자를 만드는 날을 기념하는 민족은 없습니다. 우리 민족만이 가진 특유한 자랑거리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민족의 글자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과학적이고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실용적인 글자가 바로 우리 한글인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만이 내세우는 말이 아니라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예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종대왕께서는 일찍이 민중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한글을 창제하시니 즉 한글에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민족의 창의력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한글을 통해 민족 의식과 창의력을 키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을 참된 반성과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는 계기로 삼아 먼저 우리의 생활에서 항상 고운말 바른말을 쓰기에 힘써야 하며 우리 글을 바르게 기록하여 쓰는데 각별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나라 국민이나 자기 나라 문화와 말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나라가 없는데 우리가 우리말과 글을 쓸 줄 모른다면 얼마나 수치스런 일이라 하겠습니까? 한글날을 맞이한 우리는 한글 창제의 정신을 이어받아 학생의 신분을 지키고 열심히 공부하여 나의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한글날

10월 9일은 조선시대 제4대 임금이신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제정하시어 1446년 세상에 반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1926년 훈민정음 반포 8주갑(480년)을 맞이하여 세종실록 28년 9월조를 따라 음력 9월 말일을 '가갸날'로 정해서 기념식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하여 1927년에는 음력으로 환산하여 10월 29일로 하다가 2년 후 다시 환산에 의문이 있어 10월 28일로 재환산하였는데 또 다시 1940년 경북 의성의 모 고가에서 훈민정음 반포 원본의 발견으로 10월 9일로 확정하였다. 그러나, 이어 조선어학회 사건과 한글 탄압 정책으로 중단되었다가 1945년 해방과 함께 '한글날'로 부활되고 이 날을 기념하여 세종대왕의 높은 정신과 뛰어난 슬기를 기리게 되었으며 한글 창제에 함께 임했던 집현전 학자들의 공을 찬양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되새겨 보는 날로서 공휴일로 정해져 있다.

 명상의 시간 운영 자료

 여러분!

 명상의 시간입니다.

 오늘은 우리 글을 사랑하고 가꾸자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한글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과학적이고 훌륭한 글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얘기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한글은 1443년 제정되었고 1446년 그 제정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때, 세종대왕은 "말은 우리말이 분명히 있으나 글이 어찌 우리 글과 말이라고 자랑할 수 있겠는가? 더욱 이 나라마다 그들의 말과 글이 따로 있는 것은 그 나라의 자랑일 뿐만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글을 가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냐? 배우기 쉽고 쓰기 편리하고 어떤 소리든지 자유롭게 나타낼 수 있으니 이 더욱 좋으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훌륭하신 세종대왕의 뜻을 잘 받들어 우리 글을 잘 가꾸어야겠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우리의 글을 두고 외국 것이라면 더 높게 보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도 광고나 물건에 서양이름을 붙이고 외국말을 써야만 똑똑한 사람인 것처럼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세종대왕께서 물려주신 훌륭한 한글을 잘 가꾸고 보존하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부시간에 열심히 공부지 않아서 받침이 틀리는 학생은 없나요? 편지 한 통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없나요? 고운말을 쓰지 않고 상스런 말을 쓰는 학생은 없나요? 책을 많이 읽고 익히는 것도 우리 글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 글을 사랑하고 가꾸어 갑시다.

 예화 자료 1

 10월 9일은 반포 552(98년 현재)주년 기념일입니다. 세계 어떤 민족도 제 나라 글자를 만드는 날을 기념하는 민족은 없습니다. 우리 민족만이 가진 특유한 자랑거리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민족의 글자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과학적이고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실용적인 글자가 바로 우리 한글인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만이 내세우는 말이 아니라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예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종대왕께서는 일찍이 민중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한글을 창제하시니 즉 한글에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민족의 창의력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한글을 통해 민족 의식과 창의력을 키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을 참된 반성과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는 계기로 삼아 먼저 우리의 생활에서 항상 고운말 바른말을 쓰기에 힘써야 하며 우리 글을 바르게 기록하여 쓰는데 각별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나라 국민이나 자기 나라 문화와 말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나라가 없는데 우리가 우리말과 글을 쓸 줄 모른다면 얼마나 수치스런 일이라 하겠습니까? 한글날을 맞이한 우리는 한글 창제의 정신을 이어받아 학생의 신분을 지키고 열심히 공부하여 나의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학생의 날 제정 배경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항일 투쟁운동, 광주 학생 운동은 그 운동이 일어나게 된 사회적 배경, 그 운동의 발달과 결과, 그 운동이 전국의 학생운동에 끼친 영향 등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사회적 배경) : 1919년 3.1이후 일제는 한 민족의 항일 의식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이른바 문화정책을 펴 나가는데 이것은 그 이전의 무력적 탄압에 비하여 표면적으로 매우 너그러운 듯 하나 사실은 한민족의 반항정신을 좀먹는 가장 지능적인 통치 방법이었다. 뿐만 아니라 3.1운동 이후 1920년대에 전세계를 휩쓴 사회주의 사상이 한반도에 유입되어 한때는 민족주의적인 독립운동이 사회주의적인 계급 투쟁에 의하여 수세에 몰리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민족주의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자들에게도 당면의 적은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었으므로 두 진영이 서로 협력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할 목적으로 27년에 신간회를 조직하게 되었다. 신간회는 그 내부에 이데올르기적 알력이 없는 것이 아니었으나 그런데로 어느 정도 항일운동 단체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 경제속에서 1894년(조선 고종 31)의 도학혁명 이후 면면히 이어진 항일운동의 근원지인 호남지방에서 1928년 4월 18일에 광주 송정리 항일 격문사건이 일어났고 같은 해 4월 28일에는 전북 기자대회 사건이 일어났고 6월 2일에는 이리 동양 척식회사습격 계획이 탄로되었고 8월 5일에는 전라남도 소년연맹 결성운동이 일어났다. 이보다 앞서 1926년 11월 3일에는 광주고보, 광주 농업학교, 전남 사범대학교 재학생을 중심으로 한 학생 단체인 성진회가 조직되었는데 이의 지도자는 왕재일, 장재성 등이었다. 그런데, 모처럼 조직된 성진회는 주로 재학생 중심이었으므로 가끔 이단자가 생겼다. 따라서, 27년 10월에 이를 해산하고 같은 해 11월에 대체로 같은 맴버를 중심으로 하여 독서회 중앙본부를 결성하였다. 이 독서회는 각 학교의 재학생은 물론 그 학교의 졸업생과 사회단체 예를 들면 신간회의 간부들까지도 관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독서회 중앙본부에는 각각 광주고보, 광주 농업학교, 전남 사범학교, 광주 여고보, 목표 상업학교의 독서회가 가입되어 있었다. 이 단체에서는 일제의 총독부에 대하여 식민지 교육을 즉각 중지하고 각급 학교에서 한국의 역사 언어를 가르치고 사회과학연구를 활발히 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이와 같이 외친 그들의 주장을 관찰하기 위하여 위에서 열거한 여러 학교에서 동맹 휴학을 하도록 지도하였다.

 이리하여 호남지방의 각 학교에서 26-28년 사이에 여러차례 동맹 휴학 사건이 일어났다.동맹휴학을 하게된 표면상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으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이유는 다만 한 가지 즉 식민지 교육을 지양하고 한국인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학생들의 요구에 대해 학교 당국은 물론 일선에서 학교 교육을 지도 감독하는 도(道)의 학무과 등지에서는 학생의 요구 조건을 하나도 들어주지 않고 특별한 학생들을 정학, 출학, 퇴학시켰고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경찰의 힘을 빌어 그들을 체포 구속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현상은 물론 호남지방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고 각지의 모든 학교에서 겪은 공통적인 고난이었으나 불의의 항거에 감정이 격하면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호남인 기질 때문에 일제와 호남 학생간의 충돌은 언제나 격렬한 면이 있었다. 이와 같은 험악한 정세하에서 29년 11월 3일의 광주 학생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발단과 결과): 29년 11월 3일은 음력으로는 10월 3일로서 우리 민족의 개국 기념일인 개천절이었는데 우연히 그날은 바로 일본 메이지 천황의 생일인 메이지 절이었고 독서회의 전신인 성진회의 창립 3주년 기념일이기도 하였다. 일본인들은 이날 전남에서 고치 600만 섬의 생산 목표가 달성되었음을 축하하는 축제를 가질 예정이었다. 이보다 앞서 10월 30일 오후 3시 반에 광주를 떠난 통근 열차가 나주역에 도착했을 때 광주 중학 3학년인 후쿠다슈우조 등의 일본인 학생이 광주 여고보 3학년인 박기옥 등을 희롱하는 것을 목격한 박기옥의 사촌 동생 박준채 등이 후쿠다를 후려치자 두 패의 학생들 사이에 편싸움이 벌어졌다.

 이 싸움은 11월 1일에도 계속 되었으나 2일 하루는 소강 상태를 유지하다가 3일 오전 11시경에 광주 중학의 일본인 학생과 광주 고보의 한국인 학생간의 또 충돌이 일어났는데 광주 고보의 기세에 눌린 광주 중학생은 광주역 쪽으로 도망쳐 버렸다. 한편 광주 고보 학생중의 일부는 일본 학생을 편들어 보도한 일본어 신문인 광주 일보 본사를 습격하여 그 윤전기에 모래를 끼얹었다.

 이리하여 처음에는 단순한 개인 감정적 충돌이던 것이 급기야는 학교와 학교 사이의 충돌로 확대되었고 나중에는 광주 나아가서는 전·호남 일대의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간의 충돌로 발전하였다. 광주의 우리 학생들은 서슴없이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독서회 중앙 본부의 지도자들은 이와 같은 학생들의 항일 투쟁을 격려하고 후원하여 주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자 학교와 경찰에서는 한편으로는 달래고 한편으로는 탄압하는 양면 정책을 써서 사태를 수습하려 하였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탄압정책을 강화하여 광주 고보와 광주 농업 학교의 학생들을 구속하였다.

 이렇게 되자 광주의 신간회 지부, 청년단체, 사회 단체가 혼연일체가 되어 광주 학생 투쟁의 전국적 확대에 힘썼고 학생들은 항일 독립운동의 전위대가 되게 하였다. 11월 3일의 사건이후 광주 청년계의 지도적 위치에 있던 장석천, 장재성 등은 (학생 투쟁 지도 본부)를 설치하고 광주의 투쟁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도록 활동을 개시하였다. 그들은 11월 7일 이후 회합을 거듭한 끝에 광주 및 전국 학생의 행동 지도에 장석천,광주 학생인 행동 지도에 장재성, 전라남도 각 지방 학생의 행도 ,도에 국채진,노동자 및 노동단체의 지도에 박오봉, 전라남도 각 공립 보통 학교 교사와의 연락에 임종근, 외래 동지와의 연락에 강석원, 운동자금 조달에 나승규등으로 지도 업무를 분담한 것을 결의하였다.

 광주 학생들의 불같은 투지와 그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학생운동을 거족적인 항일투쟁으로 전환하려는(학생투쟁 지도본부)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광주 학생운동은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비약할 모든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11월 12일을 기하여 제2차 투쟁이 전개되었다.


명상의 시간 운영 자료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지금부터 100년전 일제의 악랄한 식민지 정책에 항거하여 우리의 선배들이 민족혼을 만방에 고한 날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 선배들의 불굴의 의지와 용기 그리고 숭고한 뜻을 기리며 그 의의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광주 학생 의거는 일본인 남학생이 우리 여학생을 조롱하자 이에 분개하여 일어난 단순한 감정적 사건이 아니라 이 의거는 1919년의 3·1운동, 1926년의 6·10만세운동과 그 맥의 연결되는 우리 민족의 일제 식민지 정책에 대한 본질적인 항거였으며, 민족정기의 발로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광주로부터 발달된 학생 의거는 전국 각처에 전파되어 거족적인 항일운동으로 전개되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만방에 또 다시 떨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적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어느 민족에 뒤지지 않은 빼어난 민족문화와 민족정신이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우리 민족을 오늘에 이르게 한 원동력인 것입니다. 광주 학생의거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더욱 뜻깊은 의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한민족의 성쇠는 그 나라의 어린이들에게 달려있다 합니다.

 어린이들의 생각이 밝고, 맑으며, 진취적일 때 그 민족은 영원히 번영하는 민족이 됩니다.

 어린이 여러분!

 오늘 이 뜻깊은 날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우리의 선배들이 조국의 독립과 겨레의 자유를 위하여 용감하게 싸운 숭고한 독립 정신과 민족 정신을 새로이 되새기는 계기가 되어야 하며 특히 북한 공산 집단과의 대립하에서 그들의 간악한 위협을 극복하고 우리의 강산 고루고루에 참다운 민주 복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정신을 이 의거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예화 자료 1

 오늘은 학생의 날 제 주년 기념일입니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 나주간의 통학생이 광주여고 3년 박기옥 등의 우리 여학생을 일본인 광주 중학교 4년생 후꾸다 등 수명이 댕기를 나꾸어 희롱하기에 박기옥의 동생 광주고보 2년생 박준채가 분을 참다 못하여 일본 중학생에게 대들어 주먹다짐이 벌어짐으로서 터지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을 조사하던 역전 파출소의 일인 순경 모리다가 일인 학생편을 들어 박준채를 때리자 광주고보 학생들이 항의하였습니다.

 1929년 11월 3일 음력으로 10월 3일 개천절이고 일제 명치 천황의 생일날인 명치절 있었습니다. 이날 오전 식을 마친 광주고보 학생들이 교외에 집결, 10월 30일 기차안에서 발생한 사건을 한국인 학생의 잘못으로 대서 특필하여 보도한 일인 신문 광주 일보를 포위하여 항의, 공장에 들어가 윤전기에 모래를 뿌렸고, 신사 참배를 하고 오는 일본 중학생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전국 방방곡곡에서 항일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은 1930년 3월까지 계속되었고, 그 동안 동원된 학교 수는 보통 학교에서(초등학교)대학에 이르기까지 194개교, 참가학생 수는 54000명에 달했고, 많은 학생들이 처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3·1운동은 민족 자결주의 풍조라는 외부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이 광주 학생 의거는 순전히 현실적인 상황에서 폭발된 3·1운동이후 최대의 투쟁으로 확대되었던 것입니다. 이 광주 학생 의거는 불의를 미워하는 우리 민족의 강한 정의감과 나라를 내 몸같이 생각하는 주인의식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민족 정기를 계승 발전시켜서 우리 나라를 더욱 공고히 하여야겠습니다.


세계 인권선언일


 1628년 영국에서의 '권리의 청원'과 1689년 '권리의 선언'에 이어 1776년 미국 버지니아주

에서의 인권장전은 '독립선언]에 이르게 되고 기본적 인권 보장 사상의 전면적인 확립면에

서 살펴볼 때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 혁명이었다.

 이와 같이 미국의 독립 선언문과 프랑스의 인권사상은 근대 국가의 이념으로 다시 이어져

1945년 유엔총회에서 인권위원회가 구성되고 1948년 9월 파리에서 개최된 제3회 유엔 총회

에서 인권에 관한 만국 선언이 결정되었으며 1948년 12월 10일 정식으로 유엔 총회에서 세

계 인권 선언이 선포된 것이다.

 세계 인권 공동 선언 < 1948. 12. 10선포>

 1조 :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한 가족, 형제, 자매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서로

 친절하여야 하며 사랑하여야 한다.

 2조 : 우리들의 권리는 우리들의 재산이나 종교나 또는 색깔이나 정치 이념에 조금도 좌

 우되지 않는다.

 3조 : 우리들의 생명에 대한 권리와 앞으로 살아나갈 권리가 있다.

 4조 : 아무도 우리를 노예로 삼을 수 없다.

 5조 : 아무도 우리를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해치거나 벌할 수 없다.

 6조 : 우리가 가진 인간의 권리는 세상 어느 곳에서나 존중함을 받을 것이다.

 7조 : 법률 앞에서도 우리들은 다른 어떤 사람과도 똑 같은 권리를 가진다.

 8조 : 만약 우리가 남에게 어떤 권리를 빼앗길 때에는 우리들은 법관에게 그것을 찾아 달

 라고 요구할 수 있다.

 9조 : 법에 어긋나는 일을 행하지 않은 이상 아무도 우리를 잡아서 감옥에 넣을 수 없으

 며 딴 지방에서 딴 나라로 실어갈 수 없다.

 10조 : 법에 어긋나는 일을 행하였다는 협의를 받았을 때에는 우리는 공정한 법에서 공정

 하게 공개된 재판을 받을 수 있다.

 11조 : 우리는 확실한 법행 사실이 우리에게 발각되기 전에는 무죄의 것으로 인정될 것이

 며 우리들이 행한 일이 법에 어긋나지 않았을 때에는 아무도 벌할 수 없다. 만약

 법에 어긋나는 일을 행하였다 하더라도 법에 규정된 것보다 무거운 벌을 우리에게

 지울 수 없다.

 12조 : 아무도 법에 의하여 인정된 상당한 이유없이 우리의 시선을 뜯어볼 수 없으며 우

 리의 승낙 없이 우리 집에 들어올 수 없다.

 13조 : 우리는 마음대로 우리 나라에 어디든지 여행 할 수 있으며 또한 외국에 다녀올 수

 있다.

 14조 : 만일 누구라도 자기 나라에서 사는 것이 편하지 못한다던가 또는 대우가 좋지 못

 할 경우에는 다른 나라에 가서 살수가 있다. 자기가 한 일에 잘못이 없는 이상 누

 구나 이렇게 할 수가 있다.

 15 : 우리들은 모두 어떤 나라에 속할 권리가 있다. 아무도 이런 권리를 우리에게서 빼앗

 을 수 없으며 또 우리가 자원하여 다른 나라 시민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16조 : 남자나 여자나 일정한 연령에 달하면 자기가 선택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

 룰 수 있다.

 17조 : 우리들은 혼자서나 또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재산을 가질 수 있으며 아무도 이

 를 함부로 빼앗아 갈 수 없다. 다만 정부만이 우리가 가진 어떠한 물건이 모두 사

 람에게 필요할 경우에 이를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18조 : 우리들은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으며 우리들이 마음에 드는대로 종교를 선택 또는

 변경할 수 있으며 우리들이 생각하는 바를 남에게 말할 수 있다.

 19조 : 우리들은 우리들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으며 글도 쓸 수 있으며 또

 어떠한 방법으로서도 서로 생각하는 바를 주고받을 수 있다.

 20조 : 우리들은 어떤 일을 저지르지 않는 한 다른 사람과 회합할 수 있으며 또한 단체를

 모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에게 억지로 어떤 화합에 가라든지 또는 어떤

 단체에 가입하라고 할 수 없다.

 21조 : 우리들은 선거에 참가할 수 있으며 관직을 가질 수 있으며 정부가 국민을 위하여

 행하는 모든 좋은 일에 참가할 수 있다. 정부는 국민의 소원을 존중할 것이다.

 22조 : 우리들은 명예롭게 살 권리가 있으며 사람들은 굶주리거나 앓지 않게 하기 위하여

 베풀어지는 모든 좋은 일을 한결같이 누릴 수 있다.

 23조 : 우리들은 우리 힘에 맞는 어떤 일이라도 구할 수 있으며 상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으며 좋은 노동 조건 아래서 상당히 좋은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는 동시에 노동

 조합을 조직하거나 또 이에 가입할 수 있다.

 24조 : 우리는 쉴 권리가 있으며 공정한 노동시간을 가질 권리가 있다. 또 임금 지불을 받

 을 권리가 있다. 또 임금 지불을 받아가며 휴일을 가질 수 있다.

 25조 : 우리들은 사고 또 나이가 많아 일할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좋은 음식과 의복과 숙

 소와 의료와 연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어머니와 아들은 한결같이 특별한 보호받

 을 권리가 있다.

 26조 : 우리들은 초등학교에 다닐 권리가 있으며 또한 우리 힘이 자라는 데로 상급학교에

 올라갈 수 있다.

 27조 : 우리들은 예술과 과학이 이루어 놓은 것을 즐길 수 있으며 우리가 예술이나 과학

 방면에서 발표한 글이나 또는 성취한 일에서 나오는 소득을 받을 수 있다.

 28조 : 우리들은 이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고 평온하고 행복한 세계에 살 권리가 있다.

 29조 : 우리들은 사회에 대한 각자에 의무를 다할 것이나 남의 권리를 짓밟지 않도록 한다.

 30조 : 어떠한 사람이나 나라도 이 선언에 어느 것이라도 파괴할 수 없다.

 명상의 시간 운영 자료

 오늘 세계 인권선언일에 즈음하여 인권선언의 의의와 그 유래를 살펴보고 우리의 자세를 바로 잡고자 합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기본적 권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것이며 이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세계 인권선언은 이같은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정치적 이념이나 체제를 초월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보장하여야 함을 헌장의 형식으로 선언한 인류의 발전과정에서의 획기적인 일인 것입니다. 인류는 그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인권을 박탈당하고 강권에 구속된 경우가 허다하였습니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와 나치즘이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의 대두로 기본적 인권은 더욱 유린되었던 것입니다. 2차대전후 나치즘과 파시즘이 붕괴하자 인권의 존엄함을 강조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보장하여야 함을 명문화할 필요를 느껴 1948년 12월 10일 국제연합은 이를 헌장화하여 선언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오늘 인권선언일을 맞아 그 뜻을 새김에 있어 가슴아파 오는 것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북한 괴뢰의 독재 정치하에서 신음하는 북한 동포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며 또 이산가족의 슬픔을 아직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뼈저린 아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 빨리 조국 통일을 실현하여 북한괴뢰의 폭력 정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북한 동포를 구하고 이산가족의 슬픔을 해소하여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마다 인간의 존엄성을 재인식하고 나의 권리와 함께 남의 권리도 소중히 하며 자유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확인하여 정의로운 사회, 민주복지사회 건설에 적극 매진하여야 하겠습니다.

 예화 자료 1

 12월 10일은 유엔총회에서 "인권공동선언"이 채택된 날이며 이것은 인류사회의 모든 인간이 출생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인권의 존엄성을 재인식케 하고 자유와 정의와 세계 평화의 실현에 대한 신념을 새로이 한다는 의미에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 동포들은 인권을 유린당하고 인간의 가치와 자유를 부정당한 채 공산주의의 암흑치하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북한 동포를 하루속히 자유의 품안으로 해방시키겠다는 우리의 결의를 새로이 하는 한편, 나아가서는 승공 통일의 길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인권존중이란 남을 존중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을 존중한다는 의미도 포함되 있습니다. 자기자신을 존중한다는 뜻은 남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도록 바르게 행동함으로써 인격의 침해를 받지 않고 자기 명예를 더럽히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학생 여러분!

 우리 모두 자기와 남의 인격을 존중하는 민주시민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명상의 시간 운영 자료

 어린이 여러분!

 우리는 한 해가 거의 끝나갈 무렵 크리스마스를 맞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 크리스마스가 전래된지는 200여년밖에 되지 않으나 그 동안 크리스트교는 우리 나라에 새 문명을 일깨워 주고 만민 평등 사상을 심어주는데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어린이 여러분들은 성탄절이 다가오면 선물, 카드, 캐롤, 산타클로스 등 여러 가지 즐거운 생활들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성탄절은 떠들고 노는 날로 잘못 생각하는 청소년들도 있으나 이러한 생각이나 행동은 성탄절의 진정한 뜻을 전혀 모르고 하는 행동입니다.

 성탄절은 엄숙한 날인 동시에 사람들의 꿈을 키워주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형식적이고 사치스러운 짓을 하거나 경박한 행동이 없도록 할 것이며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과 함께 고통과 기쁨을 나누어 갖는 뜻 깊은 성탄절을 보내도록 합시다.

 예화 자료 1

00 년 올해를 마무리지어 가는 즈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맞아 예수 탄생의 의의를 생각하고 그리스의 가르침이 우리의 현실에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서에 예수가 말씀하시길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들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러분 중에 기독교신자가 아닌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종교를 가졌든 간에 사랑의 정신은 어느 누구라도 실천하고 구현해야할 가장 숭고하고 변치 않는 덕목일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자비를, 공자님은 인을 가르쳤습니다. 그 모두가 사랑인 것입니다.

 민주주의 근본 이념은 인간 존엄성을 바탕으로 한 자유 평등 박애의 실현입니다. 이와 같은 사상의 뿌리는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발생 성장하여 왔던 것입니다. 즉 민주주의 이상의 실현은 곧 사랑의 구체화인 것입니다. 이 땅에 민주이상을 실현한다는 의미는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을 실현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상으로 삼는 정의로운 미주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지름길이 곧 예수의 사랑의 정신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믿음과 화합의 정신 풍토를 가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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